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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모기 Mar 07. 2024

멋지다. 아이들에게서 받은 단어 선물

내 삶의 방식

방학을 맞아 둘째 셋째 아이가 집에 머물렀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니 복작거리고 화목하니 좋다. 개학이 다가온 둘째가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 식사, 건배가 빠질 수 없지. 술에 약한 나도 딸도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내일이면 객지로 떠날 딸의 옆얼굴을 보며 밀려드는 미안함. 늘 그렇듯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아쉬움의 파도로 밀려온다.


딸과 둘이서 잘그랑 잔을 부딪치며 빨간 내가 빨간 딸에게 묻는다.

- 엄마는 네게 어떤 엄마야? 한 단어로 표현하면..

- 멋진 엄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가 말한다. 단어가 과분하다.

- 늘 해주는 것도 없는 엄마인데... 엄마의 단어는 '미안하다'인데. 아들은 어때? 네 엄마는 어떤 엄마니?

- 멋진 엄마지!!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늘 바빴다. 새로운 것이 궁금한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어린아이 둘을 두고 교사임용 준비를 했고, 어린아이 셋을 두고 대학원에 다녔다. 한 달간의 합숙 연수, 한 달간의 해외 연수, 6개월간의 합숙 연수에 가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어렸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있으나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후회는 없다. 그 시간들을 지나는 동안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묵묵히 걸어와 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엄마가 된 이후로 늘 생각했다. 아이 때문에 못했어,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없었어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아이 뒷바라지를 한다고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 올인하는 엄마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긴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되기 싫었다. 아이를 위한 삶을 살고 나서 나중에 아이 앞에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같은 대사를 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육아 방식은 '방목'이었다. 사랑의 울타리를 널찍하게 대신 단단히 쳐놓을 테니 너희는 그 안에서 맘껏 뛰어다니며 놀며 자라라. 넘어져도 스스로 흙을 털고 일어서길 바랐다. 자잘한 상처를 입으면서도 웃으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해주는 어른보다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우리 집 세 아이에게도 그렇고 학교에서 만나는 수 만 명의 아이들을 향해서도 같은 마음이다. 내 삶 자체가 손바닥만 한 교과서라도 된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늘 품고 산다. 그래서 우리 집 두 아이가 내게 전해준 '멋지다'라는 형용사가 고맙다. 육아와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서.


멋진 엄마.

멋진 교사.

멋진 어른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멋진 노인으로 나이 들고 싶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저 멋짐을 내 것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멋진 인생, 좋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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