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2월, 연구년인 나의 2월 이야기
여름과 겨울에 방학이 있어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맞는 말이다. 방학은 확실히 달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교사에게 방학이란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방학이라는 쉼 없이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화살이 날아다니는 이 어지러운 학교 생활을 해 낼 수가 없다.
방학이 다가오면 교사들의 몸엔 신호가 온다. 쉴 때가 되었어요 하는 강력하고 명확한 신호. 중학생 아이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넘친다. 아니, 모든 평가가 끝난 시점이라 아이들의 활력은 학기중보다 오히려 높아져 꺾으려 해도 꺾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교사의 배터리 잔량에는 위험 신호가 뜬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예민해진다. 상냥함이 적어지고 마음에 날이 서는 스스로를 보며, 쉴 때가 되었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방학식 날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가까스로 아침에 몸을 일으키고 혼신의 힘을 다해 학년말의 나날을 보낸다.
요즘은 대부분 학교들이 1월 초에 종업식과 졸업식을 한다. 그리고는 겨울방학이다. 방학 중 교사들의 상황은 41조연수라는 명칭의 연수 기간이다. 완전히 방전된 교사들, 일단 며칠은 자야 한다. 겨울잠에 빠진 곰처럼 깊게. 학년말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기운까지 쥐어 짜냈기 때문이다. 쉬어야 산다. 아이들의 쫑알거림도 잠시 잊고, 학부모님과의 소통도 잠시 닫고, 파도같이 밀려오던 업무도 모두 끊고.
하지만 업무 마무리를 못한 교사들은 방학에도 출근한다. 교사는 수업만 하지 않는다. 수업은 끝났으나 업무는 진행 중인 교사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학교생활기록부 담당 교사는 생활기록부 최종 점검을 해야 하고, 교육청 예산을 받는 사업을 담당했던 교사는 정산 작업 등을 한다. 방학이 되어도 완전한 휴식이 불가능한 교사도 많은 것이다.
교사들의 동면 기간은 짧다. 새로운 일 년 준비를 해야 한다. 2월부터는 업무 개시라고 보면 된다. 특히 학교를 옮기는 교사에게 2월은 더욱 분주하다. 2월 초 발령이 나면 새로운 학교에 쭈뼛쭈뼛 찾아가 인사하고 업무희망원을 쓴다. 교육 연차가 높아 담임보다는 부장업무를 담당했던 교사라도 학교를 옮기면 보통 담임을 맡게 된다. 낯선 지역, 낯선 학교, 낯선 교사들 틈에서 적응을 준비하는 것은 몸과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얹어지는 느낌이다.
학교에서 부장 역할을 맡고 있는 교사들은 조금 더 바쁘다. 학교의 핵심부장인 교무부장은 겨울 방학에 휴식이 어렵다. 새 학기를 위해 사전 작업할 것이 아주 많다. 발령이 나지 않은 교과나 휴직 교사가 있을 경우 기간제 교사를 모집하는 것이 대표적인 일이다.
연구부장은 전교사들이 모여서 새 학년을 준비하는 워크숍 준비에 바쁘다. 새로운 한 해를 함께 할 교사들이 정해지면 2월 중순에 며칠간 모두 모여 진한 회의를 한다. 수 십 명을 위한 프로그램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하고 자료집을 만들고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는 일은 자잘하게 고된 일이다.
올해 연구부장을 맡게 된 동료교사의 연락이 겨울 방학 내내 잦다. 1년 전 나의 모습과 같다. 연구년이 아니었다면 내가 했을 일이다.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도울 수 있는 것을 돕는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 방학 없이 일하는 동료가 짠하다. 부장들 십여 명이 모이는 부장워크숍 이틀, 선생님들 모두 모이는 전교사 워크숍 사흘을 준비하는 것의 분주함과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2월 중순 이후로는 모든 교사의 정신없는 시즌 시작이다. 새로운 동료 교사들과 회의하고 계획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고도 많다. 업무와 수업도 협의하고 미리 준비할 일이 많다. 평가 계획서를 써야 하고 수행평가의 세세한 항목을 구상해야 한다. 한 학기의 수업 흐름을 잡고 세세한 수업 활동지까지 만들어 두어야 한다. 담임을 맡은 경우 반 아이들과 만날 계획을 세우는 것도 큰 일이다.
교사들의 겨울 방학이 길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교사의 2월은 방학이 아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없지만 교사는 이미 바쁘다. 교사의 2월은 몸보다는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하루하루 어깨가 무거워 오고 3월이 가까워지면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어떤 업무를 맡을지 어떤 아이들의 담임이 될지 어떤 학부모와 만나게 될지 약간의 설렘도 있지만 그 설렘이 걱정과 부담감을 잠재울 수 없다.
2월이 되니 내가 올해 연구년이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분주한 동료 교사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는데 나는 그만큼 종종거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코 앞의 3월을 위해 수업과 담임과 업무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몸과 마음이 비교적 가볍다.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열심히 답해주는 것 말고는 바쁜 동료들을 도울 방법도 달리 없다.
연구년교사로서 제출했던 연구계획서를 수정하고 있다. 급하게 작성했던 계획서의 빈틈을 채워서 수정한 계획서를 교육청에 보내야 한다. 수정된 계획서를 바탕으로 연구 내용과 방법을 조금 더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하며 2월을 산다.
부디 나의 동료 교사들이여, 방학이지만 전혀 방학이 아닌 2월을 힘내어 보내시기 바랍니다. 농축된 에너지를 몸과 마음구석구석에 꼭꼭 담아놓으시길 바랍니다. 3월 이후 저는 선생님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애써 보겠습니다. 결국은 다가오고야 말 3월의 첫 출근일까지 최대치의 힘을 몸과 마음에 가득 채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