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축제와 매화축제
남쪽 마을에 봄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수 백 킬로미터라는 거리가 아득했지만 그래도 차에 시동을 걸었어요. 오는 봄을 달려가서 맞이하고 싶었거든요.
봄을 만나러 가며 보는 길가의 풍경도, 도착한 남쪽 마을도 아직은 갈색입니다. 누런 겨울 빛깔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게다가 미세먼지까지 진하네요. 지리산의 공기는 맑음일 줄 알았는데 수도권과 다르지 않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어디라도 봄 햇살이 진해지면 탁한 공기도 함께 올 수밖에 없는 건가 봐요.
구례의 어느 마을로 들어서니 노란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을로 깊이 가면 갈수록 노랑이 점점 많아집니다. 산수유꽃축제예요. 산수유는 노란빛의 안개꽃 같네요. 자잘한 점들이 모여 완성되는 그림 같아요. 나이가 아주 많을 법한 거대한 산수유나무, 노란 꽃송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을 한참 걸었습니다. 졸졸 개울물 소리가 막 꽃망울 터뜨리는 산수유와 잘 어울리더군요.
노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매화도 만났어요. 그곳은 훨씬 사람들이 많아서 온전히 꽃송이들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희고 작은 매화의 꽃잎들도 산수유만큼 연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웠어요. 멀리서 바라보면 역시나 무수한 흰색의 점들로 보입니다.
그 가혹한 겨울 추위를 견디고 햇살에 가장 빨리 반응하여 세상으로 고개를 내미는 꽃들이 신기했어요. 나뭇가지 속 어디에 숨어 있다가 뿅 하고 나왔을까 궁금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사람들을 아주 많이 웃게 해 주니까요. 꽃을 바라보며, 꽃 아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며 모든 사람들이 활짝 웃고 있었거든요. 저도 덩달아서 행복했습니다. 꽃송이의 개수만큼 사람들의 행복 숫자가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요, 이틀 동안 꽃 사진을 수 십장 찍다가 생각했어요. 첫 봄꽃들은 색이 진하지 않아요. 아직은 갈색인 겨울의 빛깔을 해치지 않아요. 저 멀리 보이는 다른 나무나 산봉우리의 색깔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연한 노랑이거나 연한 핑크인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곧이어 피어날 목련만 하더라도 얼마나 꽃이 크고 새하얗습니까. 진달래나 개나리도 따라서 피겠지요. 그 아이들도 분홍색, 샛노란 색입니다. 이어질 다른 봄꽃들은 말할 것도 없이 색이 진하지요. 장미는 또 얼마나 빨간가요. 하지만 산수유는 달라요. 연해요.
쨍한 빛깔을 지니지 않은 첫 봄꽃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너희들 참 예의가 있구나. 너의 예쁨을 찐하게 내세우지 않는구나. 배경과 어우러지려는 고운 마음을 지녔구나. 세상 사람들이 천천히 봄의 빛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서서히 세상을 물들이려 하는구나. 배려하는구나.
남도에서 봄꽃 구경을 실컷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산수유와 매화의 고운 마음을 생각했어요. 나도 그 아이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네요. 강렬한 빛으로 세상에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색상과 비슷하게 은은하게 빛깔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은은한 아름다움,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꽃, 산수유와 매화로부터 겸손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