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Aug 24. 2023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일곱 살의 다짐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그때 순간이지만 겁에 질린 큰오빠의 눈을 보았다. 그 후로는 참 이상도 하지? 더는 큰오빠의 주먹이 무섭지 않았다. 큰오빠가 나를 때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너는 나를 아프게 할 수는 있어도 다치게 할 수는 없어.’

  이 말은 훗날 이어진 모진 세월들을 버텨올 때, 오랜 시간 나를 지켜주는 주문이 되었다.

“아무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어.”

놀랍게도 이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때 내 나이가 겨우 일곱 살 무렵이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 산만언니 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감당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일곱 살 때 저런 생각을 했다고?
믿기 어렵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인생의 쓴 맛을 알게 된 때는 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누나는 나보다 한 살 많았는데, 생활 부적응 장애를 겪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의력 결핍'이나 '과다행동' 아니면 약한 발달장애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아무도 그런 장애를 생각하지 못했다.

누나는 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곳으로 샜고, 몇 시간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부모 속을 썪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너무도 화가 난 엄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으로 누나 목을 졸랐다. 내가 그때 들은 말은, 너 죽고 나 죽자,였다. 엄마는 당시에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그 마음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좋은 것으로 승화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누나의 그 정도 일탈로 어머니가 그런 행동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나는 그 이후로 결혼하기 전까지 이십 년 가까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바깥에서 지내는 가출 생활을 했고, 집은 그로 인해 늘 어두웠다. 아무리 없는 자식이라 쳐도, 명절에 누나  없이  한숨으로  지내야 할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어쨌든, 아직 어렸던 어머니(어머니는 이십 대 초반에 누나를 출산했다. 그러니 그 때도 아직 이십 대였을 가능성이 높다.)가 자신의 발달장애를 잘 몰랐던 누나에게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한 충격적인 행동은 여덟 살에 불과했던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볼 때, 개인에게 굉장히 충격적으로 경험케하는 어떤 사건은 그 사람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성숙시킨다.

성숙은 반드시 긍정성만을 갖지 않는다. 어둡게 성숙할 수도 있고 밝게 성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숙은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들어 보이게 한다.

그것은 신체의 성숙뿐만 아니라 감정의 성숙, 이성의 성숙, 영성의 성숙, 모든 것을 아우르는데, 모든 면에서 나이보다 더 빨리 인생을 이해하고 알아차리게 한다.

인생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행복보다 불행이 더 크고,
같이보다 혼자가 더 안전하다는

치명적이면서
더 깊은 늪으로 자신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인생은 시간축으로 단방향성을 가지지만,
삶은 다방향성으로 나아간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사건은 벌어지지만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책의 주인공은, 어리 시절의 아픔 이후 계속 불행을 마주한다. 삼풍백화점 사고까지.

그리고 그런 연속적인 불행은,
나쁜 인생 가치관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제 책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던 내 어린 시절 삶을 돌아본다.

어렸을 땐
어머니를 원망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을
어렸던 엄마를 상상해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야 보인다.


나도 빨리 어른이 되었지만
엄마도 빨리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켜난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