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210쪽
장작에 불을 지피려면
장작과 장작 사이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혜민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210쪽)
장작과 장작이 내게 던져진 시간들이라면,
장작과 장작 사이의 빈 공간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불꽃을 피우기 위해서 반드시 빈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빈 공간은 지푸라기를 집어 넣고 나뭇가지를 비비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피울 때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내 삶이 원시적인 도구 외에는 아무것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나락에 떨어져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뭇가지를 손바닥 껍질이 까지도록 비벼야 겨우 불씨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빈 공간입니다.
이때의 빈 공간은 휴식이나 비움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때의 공간은 불씨를 만들어 줄 조력자로서의 물리적인 부피입니다.
사실 조금 더 정확이 말한다면,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간이 아닙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기로 가득 차 있는 공간입니다.
빈 공간에 들어왔다 나가는 보이지 않는 바람입니다.
책에서는 ‘빈 공간’을 바로 ‘쉼’으로, ‘여유’로 이어가 버려 조금 식상한 책이 되어 버렸지만, 실제로 장작에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그 공간은 나를 쉬게 하는 공간, 한 걸음 늦게 출발하는 그런 식의 여유가 아닙니다.
불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공간은, 여유로움이 아닌 간절함입니다.
작지만, 눈에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그것은, 간절한 바람 한 조각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작은 바람입니다.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
때로는 그런 작은 바람조차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바람이 들어오고 나갈 작은 공기구멍조차 꽉꽉 막아둘 때가 있습니다.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하거나, 스스로 고립을 자초합니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으로
부정의 부정의 생각으로 가득 찬 바닷속에 잠겨
마지막 가능성조차 모두 닫아거는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지경으로
스스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사람인지라,
어리석고 연약한 자인지라,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힘들면 그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도움이 없다고 생각되면,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마음도 닫고.
그렇지만, 정말 정말 작은 숨구멍 발견하고
누군가 입김을 불어넣어줄 때,
얼른 눈을 떠 보세요.
바람이 부는 곳으로 눈을 돌려 보세요.
문을 열고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손길이라도,
두툼한 근육의 손길이 아니라,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와 있더라도
두 손으로 꼭 잡고
조금씩 문을 열어 보세요.
인생에 끔찍한 바로 그 순간이 오더라도,
작은 공기구멍 하나,
실수인 척 열어 놓으세요.
하나님은 작은 숨구멍으로 여행한답니다.
바람이 많이 부네요.
이제 긴 옷을 입어야 할 때인가 봐요.
이러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성큼 뛰어오겠지요.
불을 피워야 하는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이 오고 있어요.
가슴 한 켠에 작은 공기구멍 만들어
누구든지 조금씩 들어왔다 나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