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꼬리 단상 13> 바람 불어 아픈 날

아빠, 바람이 불어요

by 봄부신 날

아버지의 죽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어.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방현희의 『달을 쫓는 스파이』 236쪽에서)


아빠. 그거 알아요?

작가의 글처럼, 아빠의 죽음도 제게 상처가 되었다는 걸요.


그날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상담실무자로 교육을 받고 있었을 때거든요.

해결중심치료 실습 중이었을 거예요.

아니면 조별로 소시오드라마 실습 중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평소에도 늘 다른 사람을 위해 덜컥 보증을 잘 서던 착하고 순한 아빠.

그 노인병원에서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어느새 친구가 되어버린

어떤 할아버지의 말에 넘어가, 대신 병원비 보증을 서주겠노라고 약속을 했고,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그 사람 대신 아빠를 붙잡았지요.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 갇힌 아빠라니.

못된 병원 같으니라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그 사람 병원비를 대신 보내달라던 아빠의 간절함을,

또 속는 것도 같았고,

사실, 사실은 돈이 한 푼도 없었잖아요.

게다가 합숙 교육 중이라 움직일 수도 없었거든요.

죄송해요.


그날 결국 아빠는 늦게 늦게 겨우 집에 돌아가게 되었고,

심신이 지친 아빠는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지요.

아, 바람이라도 불면 좋으련만.

죄송해요.

(이 말씀도 못 드렸잖아요.)


암 투병 중이던 당신은

상태가 더 악화되었고,

그 뒤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어요.


아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사실은 아빠가 제게 상처를 받았겠지만,


놀랍게도,

아빠의 죽음은 제게도 큰 상처가 되었어요.


어쩌면 그 상처는,

자학적인 상처.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그런 아픔일지 몰라요.


아, 그날로 다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상처란,

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태어나고, 상대를 고르고, 공격해 들어가는

무서운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상처에 관한 한,

자신이 상대에게 상처를 직접 주지 않았다고,

바위같이 믿어도,

그 믿음은 모래성과 같은 거였어요.


상대는 어처구니없이

내 눈빛 하나에,

내 손짓 하나에,

바람처럼 새어 나온 나의 말 하나에,

너무 쉽게.

상처를 받고 말죠.


그리고 상처는,

잘 지워지지도 않아요.

아무리 문질러도, 그대로 남아 있어요.


상처는

덮어둘 순 있지만

지워버릴 순 없어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일 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고 버티어 서 있죠.


상처란, 내가 주지 않아도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니까.

상대가 입은 상처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어요.

발화점은 분명히 나였으니까요.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하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라고.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서,

나는, 상처 입은 누군가에게,

모든 사람 중 하나인 불특정 다수가 되지 않아요.


상처는 오직,

‘일대일’ 또는 ‘일대다’로만 만들어지죠.


오늘은,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내게 상처를 입힌 것처럼,

갑자기 말을 하지 않거나,

갑자기 웃음을 짓지 않거나,

갑자기 냉랭하게 돌아서는 등

말없이 저지른 행동으로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네요.


오늘은,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그 바람에 모든 상처 씻겨 간다면.

그랬으면 좋겠어요.


파아란 하늘을 보니, 문득

아빠가 보고 싶어 지네요.


하늘나라에서 잘 계신 거죠.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에 가셔서 참 감사해요.


참, 그곳에도 바람이 부나요?

천국도, 솔솔,

바람 부는 곳이면 좋겠어요.


아프지 않은 바람.

아빠, 이름 같은 바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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