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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01. 2024

만우절 하면 떠오르는 추억

중학생 시절 이야기


[만우절 하면 떠오르는 추억]



4월1일은 전 세계적으로 만우절이라고 하여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 하는 것을 하나의 재미로 웃어 넘겨주는 날입니다. 그래서 관용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만우절 얘기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곧이 곧대로 믿다가 큰 상심을 하거나 낭패를 당하는 일도 생깁니다. 가끔은 기업들이나 심지어 뉴스에서도 엄청난 일들이 터진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속이는 일들을 벌이고는, 만우절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하죠.


그런데 만약 제가,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김정은이 죽었대. 같은 말을 주변에 퍼뜨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그닥 그 부분 정보에 대한 영향력이 없으니 모두 콧방귀를 낄 것입니다. 하지만 유명한 북한 전문가가 그런 말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 지겠죠.



아침 10시 10분.

저는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이 글을 씁니다.

만우절 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사건이 떠오릅니다.


요즘 중학교 1학년생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중학교에 가려면 중학교 입학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대부분 합격했지만 시험에 떨어져 중학생이 되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암튼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는 중학교 입학 시험을 쳐서 중학교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검은색 일본식 교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밀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입학해야 하는 중학생이란 위치는 참으로 두렵고 떨리고 불안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생의 최고 위치에 있다가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 정보도 없이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간 어린 새와 같다고 할까요. 마치 불안정한 상태로 흘러다니는 부유하는 먼지 알갱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좋았던 점은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님 누나들이 아이 엠 어 보이, 유아 어 걸, 하며 뽐내듯 으스대는 그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컸습니다. 그때는 중학생이 되어야  abcd 철자를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최하위 1학년이라는 위치의 힘의  위축감과 낯선 친구, 낯선 학교, 낯선 선생님들과 만나고 새롭게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부담감, 국민학교 때보다 공부도 훨씬 어려워서 우등생 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같은 정서거 저를 가득 지배했던 때였습니다. 물론 그 때는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어서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 매우 안팎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은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남자 중학교 1학년, 머리를 빡빡 밀고 있어서 그 아이가 그 아이 같은, 이제 막 변성기로 목소리가 넘어가기 시작하고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남자아이들만 가득한 우리반 담임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담임을 맡았을까요.


선생님은 너무 예뻤습니다. 아마도 갓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아름다운 초심을 가득 채운 그런 선생님이었습니다. 나이로치자면 사실 스물서넛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 남자 중학교 1학년 반 아이들은 첫눈에 우리 담임선생님에게 모두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별명을 원더우먼이라고 알려주었던 선생님은 빼어남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철부지 같은 중학생 1학년 남자 아이들을 잘 다루었습니다. 아니, 다루었다는 말은 너무 세속적입니다. 여기에서 그 단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무척 진심으로 우리들을 사랑해주었습니다. 전체로도 사랑했지만 개인으로도 한 명 한 명 자신의 가슴에 담아 우리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가슴에 품어주었습니다.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하루에 두 시간 정도씩 자습시간이 주어집니다. 자습시간에는 자율학습을 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분명히 여기저기서 속닥거리나 선생님 감시가 조금 소홀하다 싶으면 설치고 날뛰는 아이들이 있어 교실은 금방 시장바닥처럼 변하고 맙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고 떠드는 아이들을 위협적으로 혼내며 조용히 시키는 그런 군사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반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 조용히 스스로 공부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있으면 선생님이 다른 반 몰래 우리 반에게만 영어 과외 수업을 해 줄 것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주 얌전한 양이 되어 조용히 그 시가을 기다렸습니다. 영어 선생님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다른 반 자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속삭이듯이 아이 엠 어 보이, 유아 어 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병아리가 되어 입을 오므리고 아이 엠 어 보이,라고 속삭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참으로 별난 행복이었습니다.


그런데 4월 첫 날, 반장이 교무실에 갔다 오더니, 우리 담임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며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이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날은 바로 만우절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반장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 몇 명이 교무실로 가 보았는데, 주변 선생님들 표정도 모두 시무룩하고 담임 선생님도 매우 안색이 좋지 않았다고 보고를 해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절망에 빠져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작 1개월을 같이 공부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그날 그 소식은 만우절용 선생님의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와서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선생님과 반장 아이가 공모자가 되어 우리 반 전체를 속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맑은 중학교 1학년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봄이 오고, 그러다 5월 중순경 다시 우리 담임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설마? 얼마 전에 만우절로 속았는데, 이번에도 거짓말이겠지. 이미 똑같은 소문으로 한 번 속았던 우리들은 이제 속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진짜였습니다. 세상에 담임을 맡은 지 얼마가 되었다고 이렇게 오 월 중순에 선생님이 바뀌어야 하는 건가요.


반 이이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믿을 수 없는 악몽이었습니다. 만우절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만우절 속은 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역사는 채 1개월이 지나지 않아 만우절을 그대로 되갚아주었습니다. 수업 마지막 날, 우리들은 눈물 콧물 다 빼며 펑펑 울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이제 갓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된 우리들은, 별명이 원더우먼이었던 여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을 한 시간 내내 눈물을 펑펑 쏟으며 끝냈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다른 반 아이들은 우리가 하교할 때 왜 눈이 그렇게 퉁퉁 불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얘기를 들어도 근데 왜 울어? 하는 반응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선생님을 사랑했었거든요.


나중에 반 아이들 몇 명이 모여서 그 선생님 집에 찾아 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이젠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원더우먼 중학교 첫 선생님.


후임으로 오신 50대 담임선생님은 도통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새로 오신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인 라포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채 우리는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만우절.

언제나 만우절이면 떠오르는 선생님입니다.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요. 이젠 은퇴를 했을 수도 있겠네요.

따뜻한 봄입니다. 4월 첫 날,

즐거움을 주는 하얀 거짓말로 하루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4월10일이 총선이라는 데, 왜 이리 아무런 느낌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투표하고 나서, 정치인들이 너무 고생했다고 4월 11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다고 합니다. 함 믿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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