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꼬리 단상 15> 손해 볼 각오

깡통 반지, 68쪽

by 봄부신 날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야. 위험을 감수하려면 손해 볼 각오를 해야지.

(즈덴카 판틀로바의 "깡통 반지", 68쪽)


아내와 나는 새로운 걸 시도한다는 면에서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해서 안전함이 확인되지 않은 것은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안전함에는 ‘맛’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맛있다’는 기준에 들어있지 않은 음식은 일단 맛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물론 반찬 같은 것이야 한두 젓가락 움직여보면 맛을 대충 볼 수 있으니까 시도가 가능한데, 규모가 조금 커지면 일단 몸을 사린다.


나는 아침 식사로 파프리카 몇 조각, 당근 몇 조각 등 채식을 하다 최근에는 미숫가루를 사서 우유에 함께 타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어제 우유가 다 떨어져서 맹물에 타 마셨는데 맛이 영 아니었다. 근데 오늘 아침, 아뿔싸. 우유를 잊지 않고 또 준비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가.


요깃거리가 없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오뚜기 3분 요리 카레가 있어 끓여 먹기로 했다. 나는 밥 없이 카레만 먹으려고 했는데 한 숟갈 떠먹어 보니 너무 짰다. 어쩔 수 없이 밥을 얹어 비볐는데 그래도 맛있게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지난번에 먹었던, 익히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즉석카레는 연하고 좋았는데, 아쉬운 아침식사 시간이었다.


아내는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에 대해 서로 얘기하다, 아내는 아마 어릴 때 엄마가 카레를 잘 만들어주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만드는 수고는 똑같은데, 어릴 때 짜장밥은 잘 만들어주면서 카레는 한 번도 만들어 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짜장밥은 좋아하는데 카레는 선입견 때문인지 손이 안 간다고 했다.


지금 두 자녀도 카레를 싫어한다. 엄마를 닮았다. 털 달린 강아지,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것도 엄마를 닮았고, 새로운 시도를 무서워하는 것도 닮았다.


어릴 때의 경험은 중요하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레오라 이름 붙인 강아지가 있었는데, 나는 커서도 강아지나 개를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물론 커다란 개가 으르렁 거리면 무섭다.) 어릴 때 카레를 먹어보지 않았던 아내는 카레의 냄새가 싫다고 한다.


라면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신제품을 자주 출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라면인데, 나는 새로 나온 라면을 늘 먹어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내와 딸들은 맛이 검증된 라면만 선호한다. 우리 가족이 선호하는 라면은 진라면, 스낵면, 짜왕, 너구리 정도이다.


장을 볼 땐, 가족의 불안해하는 눈초리 때문에 가능하면 교집합이 많은 라면을 사지만, 너무 욕구가 커질 때는 가끔 새로 나온 라면을 슬쩍 집어넣는다. 그러면 십중팔구 그 라면은 나 혼자 먹게 된다. 카레면 정도는 먹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절대 안 먹을 라면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묻곤 한다. 이 음식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먹어봐야 아는데, 도대체 먹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냐고. 그래도 요지부동이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맛있다는 평을 듣고 나면 그때서야 움직인다. 먹고 나서 실패감을 느끼는 게 싫다고 한다.


물론, 새로운 걸 시도하면 분명히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실패하는 경험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실패하면서 배운다. 맛이 없으면, 맛없는 라면의 종류에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맛을 알게 되면 그때까지의 실패한 모든 것을 합친 것 이상으로 더 기쁘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기쁨도 적어진다. 물론 그것이 실패할 것이라는 각오는 시작하기 전부터 해야 한다. 내가 옳고 아내가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안전한 것을 선호하고 나는 안전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선호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그 모험은 언제나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으며 반드시 그에 대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된다. 실패할 각오를 하고, 맛이 없을 각오를 하고 먹어보는 것이다.

새로운 모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행복의 가치는 그동안 실패하면서 뿌린 모든 시간과 노력과 낭패감과 실망감의 총합보다 언제나 크다.


책을 조금 더 읽다 보면 딸의 아버지가 딸에게 해주는 말이 나온다. 거부의 아들이 딸에게 접근해 오자 딸과 엄마, 이모들은 딸이 곧 그 박사와 결혼할 것이라며 들뜬상태에 있었다. 이 현명한 아빠는 딸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 금쪽같은 이야기를 기억하자.


선택은 자유지만, 선택에는 반드시 지불해야 할 값이 매겨져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사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값이 매겨져 있다는 것을.


“앞으로 살면서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다.” 아버지가 말했다.

“탁자에 놓인 물건들처럼 무엇이든 네 앞에 펼쳐져 있어. 넌 원하는 걸 그냥 집어 들기만 하면 돼.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명심해 둬라.

네가 그걸 고르는 순간, 그게 무엇이건 그 아래쪽에 가격표가 붙어 있다는 걸 말이야. 그건 네가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거란다."

아버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니 얘야, 항상 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그것이 과연 그런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신중하게 판단하기 바란다.” (85쪽)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닐까,

신중함과 모험 사이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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