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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06. 2024

(독서후기) 혼자여서 좋은 직업

권남희 번역가



"어릴 때부터 일관되게 아동문학가나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내 실력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읽기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한다고 다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문학소녀, 문학청년들은 전국에 새우젓만큼이나 많다. 나는 재능도 없을 뿐더러 꿈을 이루고 말 거야! 하는 의지도 박약하고 꿈을 향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굳은 의지로 노력해서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난사람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192쪽)



책 끝물에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첫 단락글을 읽었다. 일본어 번역작가로 유명하지만 이미 한국 에세이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권남희 작가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문학소녀의 꿈을 평범한 실재로 저평가해버리며 평범한 사람이라고 겸손해한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하면 아직 유명세도 타지 않은 나 같은 무명작가는 어디 명함도 내밀기가 어렵다. 



나도 그녀처럼 어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꾸었다. 나도 대학생 때 대학교가 주최하는 문학상에 처음으로 소설을 써서 응모했지만 낯간지러운 평가와 함께 예선도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새우젓 새끼만큼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나는 권남희 번역작가보다도 더 평범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 책 <혼자여서 좋은 직업>을 읽어보면 그걸 깨달을 수 있다. 다년간 번역일을 하면서 문장력이나 글감을 캐내는 능력이 출중해졌으리라. 나는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하나의 에피소드를 더 재밌게, 독자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스며들도록 쓰지는 못하고 있다.  내가 권남희 작가와 무언가를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고,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결론은 이 책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가볍게 쓴 것 같지만 글감 하나하나가 통통 튀어오르는 작달비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가령 "최고령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같은 제목의 글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고 일본인 작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글감으로 끌어와서 아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 상은 봄, 가을 두 차례 신인에게만 수여하는 순수문학상이다. 신인이기만 하면 될 뿐 나이 제한은 없다. 그래서 2013년에 1937년생 신인이 수상한 적이 있다. 구로다 나쓰코 씨. 사상 최고령 작가였다. ...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계획이냐는 물음에는 '10년에 한 편 정도 썼다. 살아 있는 동안 다음 작품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 써둔 작품들이나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벌써 나이는 75세이고(수상 당시) 세상이 자신을 주목할 때 다음 작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쁠 것 같은데, 기껏 뽑은 신인 작가가 쓸 계획이 없다고 느긋하게 말한다. 세상과 관계없이 마이페이스로 사는 구로다 씨의 플렉스. 당선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살아 있을 때 발견해주어서 고맙습니다'" (111쪽)



살아 있을 때 발견해주어서 고맙습니다.라니. 정말 명언이다. 다른 사람의 수상 소감인 이 명언 한 줄로 그녀는 글감 하나를 뚝딱 요리해냈다. 멋있다.




(선한리뷰)


혼자여서 좋은 직업.

번역가도 혼자지만, 작가도 혼자다.


번역가는 번역일을 맡아서 하니까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는데, 유명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전업작가로는 경제적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나도 이제 혼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겠다. 뭔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권남희 작가처럼, 혼자여서 좋은 직업임을, 전화할 때마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무슨 일이라도 밥벌이는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장모님에게,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창작 글작가도  '좋은 직업'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인생은 정말 어디로 굴러갈지 알 수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이었다." (115쪽)


아직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인생 2막을 새로 시작하는 후반전 선수일 뿐이다.

마지막 숨을 멈출 때까지, 신이 나를 부를 때까지 나는 끝장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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