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May 08. 2024

(퇴직일기) 퇴직 후 첫 어버이날

자녀와 부모 중간에

[퇴직 후 첫 어버이날, 자녀와 부모 중간에서]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일주일 전부터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 어버이날이면 늘 적지만 용돈을 드리고, 용돈과 별개로 양가 부모님께 멋진 이벤트인 양 깜짝 선물을 잘 보내던 나였다. 결혼 초기에는 정말 안마기계 같은 커다란 걸 선물해드리기도 했다. (물론 부모님은 사용도 몇 번 안 하시고 어떻게 몰래 처분하신 느낌이다. 전기세도 많이 나오고 좁은 집에 두기에도 좀 어려웠을 수가 있다. 그리고 워낙 옛날이어서 아마 진동도 꽤 컸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부모님 몸에 좋은 거 드시라고 다양한 건강식품, 과일 등을 보내드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새 17년이 지났다. 어머니 홀로 계신 지 17년. 짧은 세월이 아니다. 양가 부모님 집에 전화를 드리려고 하니 하기도 전부터 가슴이 울렁거리고 진땀이 난다. 이런 일로 내가 스스로 망가질 수 없다. 선물 하나도 못 보내드렸지만 마음은 아시리라.



장인어른부터 장모님 그리고 어머니까지 차례로 전화를 드렸다. 선물을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지만 다음에는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돈도 벌지 않는데 용돈을 보내냐고, 아내 보기에 미안하다고 말을 한다. 어머님은 아들이 돈을 벌지 않아 아내에게 기가 죽을까봐 그것이 걱정이다. 늘 며느라기 보기 미안하다고 어머니가 죄송해한다.



어머니도 긴 세월 아버지가 보내주는 수입 없이 홀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아버지는 늘 사업을 한다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했지만 언제나 사기를 당했다. 집을 저당잡히고 시작한 마지막 사업도 결국 로비한다며 술값만 잔뜩 나가고, 일본에서 들여온 최신식 기계 두 대는 동업자가 가지고 도망가버리면서 끝났다. 어머니는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 흉을 봤다. 아버지의 무책임함에 대해, 아버지가 얼마나 무능한 사람인지 증명하려 했다. 덩달아 자녀들도 아버지가 능력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건 매우 좋지 않은 부모 관계였는데, 어릴 때 나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정당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거의 무직 상태로 지내다보니 아내에 대한 고마음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여전히 늘 존중해주고 사랑해주고 격려해준다. 그러니 아이들도 아빠인 나에게 퇴진 전과 똑같이 살갑게 대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아이들이 자식농사 풍년이라고 기발한 축하선물을 준비했다. 막둥이가 5월부터 M교육기업에 정식 신입사원이 되어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제 두 딸에게 나가는 더 이상의 경제적인 비용은 없다. 통신비도, 보험료도 모두 떠나보냈다. 어버이날에 모두 바쁜지라 지난 주말 우리는 어버이날 행사를 미리 했다. 큰 딸은 당근농사 잘 지었다며 당근 하나에 5만원권을 말아 넣어 부부가 사이좋게 나눠가지도록 했다. 막내 딸은 슬그MONEY를 준비했는데 아직 인턴이어서 돈이 많지 않다며 죄송해했다. 그리고 예쁜 꽃다발. 우리 부부는 감격하며 자녀들로부터 축하와 사랑을 받았다. 행복했다.




자녀는 지금 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해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어디서 그런 믿음 듬직한 문구를 떠올렸을까. 그래서 말했다. 아니라고. 우리가 너희들로 인해 이 세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있다고.



예전 우리가 한참 가난했을 때, 아내는 꽃을 선물로 사가면 무척 싫어했다. 꽃 사올 돈을 그냥 주면 더 좋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젠 늙어가니 꽃 선물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연신 싱글벙글 웃는다. 꽃병에 물을 넣고 어디에 어떻게 놓으면 좋을지 고민한다. 누군가 락스 한 방울을 넣어주면 꽃이 더 오래산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따스한 사랑의 기운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양가 부모님에게 드린 용돈은 사실 우리 자녀들에게 받은 돈이다. 자녀들에게 그런 선물을 받지 못했다면 양가 부모님께 용돈 드리기도 무척 버거웠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5월에는 왜 그리 결혼을 많이 하는지, 준비해 놓아야 할 축의금도 만만치 않다.  



부모로서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드리고 각자 남은 5만원으로 어버이날 선물을 스스로 사기로 했다. 나는 갑자기 시계가 사고 싶어져 손목시계를 하나 샀다. 자녀들이 아빠가 어쩐 일로 시계를 다 사냐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도 내 마음을 모른다. 나는 손목이 가늘어서 시계나 반지 같은 걸 손에 장식품으로 전혀 착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몇 달 전부터 시계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갤럭시 워치 같은 것은 워낙 고가라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냥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손목을 들어서 시계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금속으로 된 시계줄은 내 손목이 감당하지 못하니까 최대한 가벼운 시계로 주문을 했다. 뭐 하나라도 남겨야지 싶어 그렇게 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부모님에게 어버이날을 축하하며 전화를 드릴 수 있을지, 얼마나 편안한 마음으로 기쁨을 나누어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어버이날은 계속, 기쁘면서 조금은 우울한 그런 날이 될 것 같다. 어머니가 집에서 자꾸 물건이 없어진다고 하면서 7년이나 같이 있었던 요양보호사를 최근에 바꾸셨다. 너무 속상하다고 3주째 전화할 때마다 한숨을 푹푹 내쉰다.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초기 치매증상이 있어 약을 잡수고 계신다. 재가복지 센터장은 그게 뭐 값나가는 거냐며 그런 걸 훔치겠냐고 했단다. 앞으로 어머니의 기억에서 더 이상 없어지는 물건이 없으면 좋겠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적당히 알아서 눈치채라고 늘 손목에 딱 붙어서 알려준다. 허송세월을 보내지마라,는 내게 주는 경고라고 생각한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지만 닫힌 우주는 언젠가는 팽창을 멈추고 붕괴될 것이다. 우리 인생도 시계 약이 떨어지면 시간이 멈추듯 그렇게 노화를 멈추고 소멸될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가슴이 많이 뛰고 힘들었지만 이제 진정이 되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도 더 깊게 말하지 못할 질병에 대한 속울음이 있다. 더 환하게 웃고 더 밝게 표정짓고 더 행복한 사람(처럼) 나를 표현한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같아지면 좋겠다. 오늘은 모든 어버이들이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한 날이 되길. 가슴 아픈 사연들은 오늘 하루 입을 꼭 다물고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아니고 퇴직) 성인 글쓰기 수업 시작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