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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30. 2024

(퇴직일기) 부부 우울

우울의 우물에 빠진 날

아내가 일주일째 감기 몸살에 우울까지 겹쳤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몇 마디 던져보아도,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하다. 도통 웃질 않으니 집안 분위기가 착 가라 앉는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한쪽이 무겁게 내려 앉으면 다른 한 쪽-그러니까 여기서는 남편인 내가 되겠다-이 텐션도 높이고 해서 분위기를 중간 정도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다는 데 있다.



아내의 우울감이 나를 휘감으면, 나비의 효과가 너무 근거리여서 그런지 나는 우울감의 늪으로 빠져들고 만다. 아내는 억지로 출근을 하고 홀로 남은 나는, 내 우울감의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진다. 깊고 깊은 우울의 우물은 떨어지는 데 한참 걸릴만큼 깊다. 그래서 누군가 꺼내줄 두레박을 내려주지 않으면 혼자 올라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하루종일 우울하고 너무 우울하고 끔찍하게 우울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빙 둘러보며 나를 치고 들어올 기회를 노린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 오베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급히 비상약으로 안정제 한 알을 삼킨다.



다행히 병원 블로그 원고 작가로 활동하는 곳에서는 어제 보낸 원고에 대해 수정 요청 없이 통과되었다. 큰 수확이고 변곡점이다. 만약 이것도 피드백이 구구절절 공격적으로 들어왔다면 내 우울감은 극도의 긴장으로 어떻게 변주가 일어날지 모른다. 나는 펑펑 울었을 수도 있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까지 나를 덮쳐 꽁꽁 싸맸을 수도 있다. 낮이면 더워지는 기온 속에서 혼자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나니아연대기의 겨울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을 수도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어제 원고를 끝으로 5월은 더 이상 작업하지 않기로 했다.



약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내 우울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내 우울의 구원은 아내다.



아내가 다시 밝게 돌아오면, 나는 금방 언제 그랬냐는듯이 되돌아올 것이다.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늘도 힘내고, 사랑해.


1초 뒤에 답글이 온다.

사랑해요.


우리의 우울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사랑하지만 우울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면역계를 장악하는 호르몬의 영향일 수도 있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다.

내 감정, 내 정서가 감기몸살 약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

감기 몸살 약을 먹은 아내가 우울해지고,

그 우울을 전달받은 아빠가 우울해지고,

그래도 이 우울은 여기에서 그친다.


두 딸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것이 그나마 감사하다.

두 딸은 밤 늦게 퇴근하여 내일 입고 출근할 출근룩 패션쇼를 하기에 정신이 없다.


아빠, 내일 이렇게 입고 가면 어때?

나는 무심하지만 상냥하게 응대한다.


너무 여름 아냐? 8월 패션 같은데?

그 정도면 된다.

눈치 채지 못한다.

아빠가 우울의 우물 속에서 눈물을 펑펑 쏟고 있음을 모른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한다.

월요일부터 벌써 4일째 골골대는 아내.

그를 위해 기도한다.

내 주 하나님이시여.

그녀가 다시 밝은 얼굴을 회복하게 하소서.

마음이 명랑해지도록 인도하소서.

내 가슴이 찢어지나이다.


어제 신경안정을 위한 비상약을 두 번이나 먹었다.

독서 밴드에 우울하다고 글을 올렸다.

위로의 댓글들이 나를 조금 붙들어 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견뎌낼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내 마음을 토로하고,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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