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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n 08. 2024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 밤

퇴직일기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지금 시간은 밤 12시32분.
그동안 한 알씩 먹던 수면제를 반 알씩 줄여서 처방 받은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오늘은 장모님 장인어른이 수원에 오셔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다녔다. 수목원을 가서 걷고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아내도 퇴근하고 와서 합류했다. 나는 금요기도회가 생각나서 8시30분에 혼자 교회로 갔다.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기려 집에 들렀다 교회로 향했다. 거의 9시 직전에 도착했다.
목사님 내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가지 않았다면 오늘 금요기도회는 열리지 않을 뻔 했다. 목사님 혼자 기도를 하셨을까. 내가 목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둘 만 남은 교회 얘배당은 기도소리로 충만해졌다. 성령 충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기도였다.
아내와 가족들도 큰 형님 집에서 돌아왔다. 피곤한 아내는 잠이 들었고, 나는 수면제를 먹고 누웠다. 30분을 누워 있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일어나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반알씩 쪼개놨던 수면제를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 한 달 여 동안 반 알로 줄여 먹던 수면제를 오늘은 한 알을 삼킨 셈이다.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올 때부터 느낌이 좀 이상했다. 멀리서부터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가 내 안에서 부서지는 느낌?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내 내면이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지금 나는 수면제 복용량을 늘여 먹었는데도 잠을 자지 못해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눈은 피곤하고, 뇌도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는다. 눈이 충혈되는 것 같다.
소니 mp3 플레이어에 헤드폰을 연결하고 자정에 적당한 음악을 듣는다. 서평을 써야 하는 책을 읽다 말고 이 글을 쓴다.
오늘 나는 장을 잘 수 있을까?
꼴딱 밤을 새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내일,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까 오늘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책을 읽다, 음악을 듣다, 스르르 잠이 들면 좋겠다.
쇼파에서 스르르 잠이 들면 좋겠다.
다른 문제가 없이, 잠깐 잠을 자는 호르몬이 부족해져 그런 것이라고, 다음 날이 되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지나가는 일이 되면 좋겠다.
아내가 오랫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는데, 이제야 그 고통을 알 것 같다. 나는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데도 잠이 오면 걱정하는 척 몇 마디 말로 위로하곤 금방 잠에 떨어지곤 했다. 그 벌을 받는 것일까?
모든 것이 아내와 반대가 되고 있다.
낮에 창문을 열어도 아내는 덥다하는데, 나는 춥다고 한다.
아내는 잠을 잘 자는데, 나는 이제 수면제를 먹어야 잔다.
아내는 이제 시원하게 대변을 잘 보는데, 나는 변비로 고생한다. 변비약을 처방 받아 먹는데도 시원한 배설이 이루어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겪여봐야 안다는 것은 진리다.
겪어보지 않은 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며 모순이다.
시간은 흐르고, 잠은 오지 않는다.
시를 읽어야 할까?
김수영 시 전집을 꺼내 본다.
<음악>이란 시가 있다.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저무는 해와 같이
나의 앞에는 회색이 뭉치고
응결되고
또 주먹을 쥐어도 모자라는
이날 또 어느 날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불이 생기어도
어젯날의 환희에는 이기지 못할 것
누구에게 할 말이 꼭 있어야 하여도
움직이는 마음에
형벌은 없어져라
음악은 아주 험하게
흐르는구나
가슴과 가슴이 부딪치어도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가슴에 음악이 흐른다
단단한 가슴에서 가슴으로
다리도 없이
집도 없이
가느다란 곳에는 가시가 있고
살찐 곳에는 물이 고이는 것이다
나의 음악이여
지금 다시 저기로 흘러라
몸은 언제나 하나이었다
물은 나의 얼굴을 비추어 주었다
누구의 음악이 처참스러운지 모르지만
나의 설움만이 입체를 가지고
떨어져 나간다
음악이여
(김수영, 음악, 전문, 김수영 시 전집 44~45쪽)
나의 설움만이 입체를 가지고
떨어져 나간다.
음악이여.
이 말을 적는데 듣고 있던 음악 하나가 끝이 났다.
snow flake라는 재즈, 그루브 같은 곡인데
떨어져 나가는 설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라라 러글즈(Lara Ruggels)라는 가수다.
이 곡이 왜 내 mp3 들어있는지 알 수는 없다.
처음 들어본다.
음악은 잔잔하고 목소리는 애수에 차 있다.
가사 내용은 모르겠지만, 전해지는 느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다.
약간의 끈적임과 허스키한 목소리가 뒤섞여 있다.
나는 이제 불을 끄고 쇼파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잠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눈이 너무 피곤하다.
잠은 오지 않는데,
밤은 계속 깊어 간다.
불을 꺼야
밤은 밤다울 것이다.
잠을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잠을 청하지  말고
잠이 나를 찾아 온다면
나는 기뻐 춤을 출 것이다.
꿈 속에서 춤추는 나를 맞이할 것이다.


읽어야 하는 책 제목이 절묘하다.
내일의 어제.
바로 지금.
오늘이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눈을 뜰 것이다.
내일의 어제에, 나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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