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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n 06. 2024

공황장애자가 읽은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

독서후기

[공황장애자가 읽은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     


궁금했다.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네 번의 큰 공황장애를 맞이한 나는, 이번 공황장애로 완전히 퇴직한 나는 다른 사람의 공황장애가 너무 궁금했다. 어떤 이유로 공황의 상태를 맞이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다 나았는지, 주변 사람(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이나 태도는 어떘는지 궁금했다. 

   

예스24에서 “공황장애”를 제목으로 검색하니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던 키워드임에도 걸려 나오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았다. 그나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최근에 서해문집에서 펴낸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 네 번째 공황을 일으켜 완전히 퇴직하고 약을 먹고 지낸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 번에는 그런 병명을 몰랐고, 10여년 전 세 번째 병원에 실려 가서도 병명을 알지 못해 큰 병원을 찾아 협진하며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가 모 대학병원에서 “공황장애”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여자이고 모 중학교 도덕교사였다. (지금 복직해서 다니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녀에게는 발단 사건이 있었다. 책에 수없이 나오는 “5월의 그 사건”이다. 교사와 학생간의 기싸움이 있었는데(보다 정확히 해석하면 기싸움이라기보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반항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학교에서는 교권위원회를 열어 교권을 세우기보다 그냥 쉬쉬 감추려 했다.     


그는 학교에서 공황(패닉-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는 일) 상태를 맞이했고 우울증과 함께 학교를 다니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렸다. 학교는 그런 교사에게 어떤 일말의 위로와 인간적인 공감이 없었고, 행정적인 부분에서 학교가 피해를 입지 않기 바라는 요구만 해왔다.     


“진료를 받는 중에 진동으로 해 둔 전화가 여러 번 울린다. 학교에서 전화가 온다. 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는다. 병가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 빨리 말해 달란다. 기간제 교사 선발 공고문을 올려야 한다고,     

학교에서 발작을 일으켜서 현재 병원에 있는 사람에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다.” (57쪽)     


나 역시 퇴직하기 전 회사와 그 이전 회사에서 이 책의 “5월 사건”에 버금가는 큰 사건이 있었다. 이전 회사 직원이 10.26 사태처럼 이름을 붙인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는데, 나 역시 그 사람으로부터는 물론이고, 회사로부터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나는 일주일간 재택근무 하겠다고 선포하고 회사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 경영자가 집까지 찾아와서 포도송이를 안겨 주면서 다음 주부터는 꼭 나와달라고 한 게 다였다. 나에게 모욕감을 준 그 가해자는 나 외에도 두 명이나 더 그로 인해 퇴사를 하게 만들고 결국 올해 회사에서 잘라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퇴직한 회사에서는, 전 직원들이 다 듣는 사무실에서 회사 대표와 30여 분간을 다투었다. 그의 비합리성과 불공정성과 어처구니 없는 사고 체계에 나는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을이 되어 네네, 하고 맞추고만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그와 말다툼을 하면서 아, 이제 끝이구나. 생각은 했다. 하지만 내게 공황이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도 그랬다. 우리가 흔히 연예인들이 잘 걸린다고 해서 연예인병이라고 알려진 이 병은 죽을 것 같은 공포 또는 그 공포가 오리라는 예기불안으로 인해 과호흡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실제 그 공포가 찾아오는 뫼비우스 띠 같은 질병이다.      


“계속 먹지도 못하고 잠을 자거나 불 꺼진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남편이 햇빛을 쬐어야 한다며 외식을 제안한다. 마누라 돌보랴, 아이들 돌보랴, 남편이 계속 고생을 한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선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장한 남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갑자기 저 남성과 '눈이 마주치면 나를 해할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인지 감정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피해망상 증상이 나타난다. 그냥, 그런 생각이 훅 치고 올라온다.” (64)    

 

병명이 추가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집 밖을 나서서 사람을 마주치면 시작되는 공황 증상. 극도의 공포를 동반하는 발작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방비,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예기불안이 나를 집어삼켰다. 밖에서 갑자기 공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집에 꽁꽁 숨어들었다. 두려움은 우울증이 되었고, 자발적으로 삶의 공간을 집 안에 가두었다. (68)     


나 역시 회사 퇴직 후 근 한 달 이상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용기를 낸다는 것이 모두 일하러 간 빈 집에서 홀로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도전’ 같은 걸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버리곤 했다.     


나는 바깥에 나가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말하기도 힘들어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날마다 엄청난 철판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걸으려고 하면 공황이 일어났다. 과호흡이 수시로 찾아왔다.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이 6개월 이상은 약을 먹어야 할 겁니다. 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6개월이라니, 그건 좀 너무 긴 세월 아닌가? 그랬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약을 계속 먹고 있다. 복용량을 조금씩 줄여나가다가 완전히 끊어야 하는데 최근 우울감이 커지면서 오히려 복용량이 더 늘어났다. 잠을 자지 못해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잔다. 그녀도 그랬다. 버려진 사람, 쓸모 없는 사람, 폐인. 그것에 다름 없었다.     


“생산하지 못하는 '나'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활자로만 존재했던 '절망, 삶의 나락'이 실체를 갖고 나를 완전히 지배했다.    

 

불안과 공황이 찾아오는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늪에 빠진 것처럼, 노력하면 할수록 더 공포에 사로잡히고 집착하게 되었다. 괴로운 생각을 반복하게 되니 감정은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강박의 끝을 달리게 되었다. 벗어나기 위해 약을 먹는다. 어떤 인지행동치료나 상투적인 위로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몇 달을 좀비처럼 가만히 '멈춰진 시간' 속을 헤맸다.“ (69)     


그녀는 늘 자신을 보살펴주고 모든 일을 대신해주던 남편이 갑자기 다리를 다쳐 그 일을 해줄 사람이 가족 중에 아무도 없게 되자 그때서야 일어나 사람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5월 그 사건’에 함몰되어 있었다. 그 사건은 그녀에게 늪이었고, 학교 주변만 걸어도 공황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남편이 다치자 그녀는 남편을 위해 운전대를 잡아야 했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했다.      


나는 몇 달 동안 '5월15일'을 무한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보, 여보!"

남편이 다급하게 찾았다. 달려가 보니 거즈로 싸맨 발가락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와 딱딱한 깁스가 붉은색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밤 열 시. 너무 늦은 시각. 이날, '5월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운전을 했다. (92)     


나는 이제 일상생활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고 걷기를 하고 돌아온다. 집에서 글 쓰는 알바를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고, 독서모임에 나간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는 일. 그것이 내 사회생활의 전부다. 일주일 동안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면 늘 혼자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찾아낸 독서모임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하면서 조금씩 나는 치유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도 내 가슴은 늘 무언가에 눌려 있고, 여전히 공황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래서 공황장애자에게는 비상약이 필수다. 나는 책에도 비상약을 넣고, 독서 모임이며 교회에 가는 가방에, 성경책 안에 비상약을 다 넣어 두었다. 언제 공황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약을 가져 가지 않으면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부터 공황 조짐을 보인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비상약을 먹었다.     


”공황장애인으로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두려움을 극복하는 행동의 무한 반복이다. 죽음에 대한 극단의 공포와 미쳐버릴 것 같은 예기불안으로 내가 할 수 있던 많은 일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매일 용기내는 삶'을 산다.“ (93)     


저자는 남편으로 촉발된 바깥 생활을 디딤돌로 삼아 조금씩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아파트 주변을 돌고, 학교 주변을 가보기도 했다. 독서모임에 나가면서 자신을 내보이면서 치유의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녀는 이제 공황장애자들을 돕는 일을 한다고 한다. 아마 유튜브도 하고 상담도 해주고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책에서 저자는 공황이 갑자기 올 때 극복하는 방법으로 병원에서 배운 <오감 훈련법>을 제안한다. 공황이 올 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주위환경을 자신과 연결시키는 훈련을 해보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보이는 다섯 가지를 인지하고, 들리는 다섯 가지 소리를 구분해보고, 몸과 손이 접촉하고 있는 다섯 가지를 인지해보는 것이다. 그 노력만으로도 자신의 과호흡이 느려지며 공황이 사그러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공황이 오면 글을 썼다.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글쓰기 훈련법>은 그녀의 <오감 훈련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황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출근하다가 10분이면 닿을 거리를 걷지 못하고 죽을 것 같은 공포로 어지럼증을 느끼며 아득해지던 그 순간을 글로 적었다. 나는 퇴직한 후에도 브런치에 공황장애 일기를 꾸역꾸역 적었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글을 적을 때 나는 생각이 한 곳으로 모인다. 공황이 들어오다가 서서히 느려지며 내 생각에 밀려난다.      


그녀는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그 동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해준 상담이 얼마나 엉터리 같았는지 깨닫는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백퍼센트 진실이다. 내가 그 상황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 다 안다는 듯이 어설픈 위로를 하는 것은 오히려 더 상처를 줄 수 있다. 나도 공황장애를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책에서 읽은 것으로 이해하고 어설픈 위로의 말을 던졌을 것이다.   

  

'5월의 그 사건' 후 나는 진짜 아픔과 상처, 삶의 절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했다. 그리고 제자들의 안부 문자를 받으며, 지난 14년의 내 상담을 반성했다. 제대로 아팠던 사람만이 백 퍼센트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그 전의 나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온몸으로 공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118)     


그녀 역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한 매개체로 글을 썼나 보다. 그녀는 블로그에 자신의 공황장애 극복 일상을 올렸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녀의 공황장애 사건은 나와 매우 비슷했다. 이겨내는 방법도 비슷했다. 독서 모임을 나가면서 치유되기 시작한 것도 비슷했다. 그녀가 일곱 가지 루틴을 만든 것도 비슷했다.     


1. 매일 좋아하는 차 마시기

아주 천천히, 여유 있게, 나무에 달린 찻잎이 햇빛과 물, 바람을 통해 말린 잎이 되어 나에게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상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마신다.     

2. 매일 좋아하는 음악 듣기

개인적으로 큰 소음에도 민감하지만 반대로 정적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멀리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적당한 소음을 좋아한다. 혼자서 잔잔한 리듬의 음악을 들으며 햇살을 쬐거나 책 읽는 순간을 좋아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시골집 마루에 엎드려 햇살을 쬐며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 바람소리와 새소리에 깜박 잠이 들곤 했었다. (186)     

3. 가능한 아주 먼 곳까지 걸어가보기

날이 좋으면 갈대밭 사잇길로 혼자서 산책을 가고는 한다. 이리저리 꼬여 있는 사람 발자국으로 생성된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제와 다른 새로운 길을 발견하곤 한다. (186)     

4. 매일 사랑한다고 표현하기

5. 매일 읽고 싶은 글 마음껏, 충분히 읽기

6. 매일 나의 감정, 욕구, 생각을 글로 쓰기

7. 작지만 소소한 일을 찾아서 실행하기 

    

위 일곱 가지 행동원칙을 습관으로 정착시키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새 갖춰졌다. 공황이 찾아와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시키는 방법을 찾았고, 꾸준히 글을 쓰며 그 기록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했다. 그토록 간절했던,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189)   

  

나는 아직도 우울증, 공황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로 힘들다. 그렇지만 침대에 누워 있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햇살을 듬뿍 받으며 산책로를 걷는다. 이제 적지만 경제적 필요를 채우기 위한 글쓰기 노동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수업도 한다. 가족의 든든한 신뢰와 헌신적인 공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6개월간 끊임없이 긍정의 눈빛으로 기도해주고 지지해준 아내가 너무 고맙다.  

   

수면제를 몇 번 끊으려고 하다 실패했다. 공황장애 약도 강제로 끊어보려 하다 실패했다. 그래서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선에서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 참가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고, 또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한다. 이제 가족들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다. 내게서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졌을 때, 막내 딸도 취직하여 자기 휴대폰 요금과 건강보험료 등을 가져갔다.    

  

나는 이제 강제로 전업작가가 되었다.

지난 주에 그동안 브런치에 올렸던 공황장애 일기와 퇴직일기를 합쳐 출판사 몇 군데에 보냈다. 읽어보고 연락을 주겠다는 메일도 받았다.     


공황장애로 인해 그녁 두 번째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이제 완전히 두 번째 삶을 시작하고 있다. 오히려 공황장애로 인해 더 극적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은 내일을 알 수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공황장애는 내게 또 다른 신의 선물일 수도 있다. 나는 날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산다.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한다.       


이 책 역시 큰 공감이 가는 이야기로 일독을 추천한다. 친구 중에 공황장애 친구가 있다면, 불안장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모른다. 우리 삶은 마지막 끝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니까.

나는 나의 내일을 믿는다. 신이 내게 살아가라고 쥐어 준 그 유한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갈 책임이 있다. 나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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