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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30. 2024

(책꼬리 단상)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유가 아니라 

(불안, 알랭 드 보통, 262~265)



자료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북미 인디언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욕망을 길러내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평생 처음 보는 유럽에서 건너온 물건들을 소유하기 위해 유럽인들에 의해 길들여졌다.



인디언들의 마음을 끌어 당긴 것은 무기, 장신구 같은 것이었다. 장신구는 놋쇠 팔찌, 주석 반지, 유리로 만든 목걸이, 구슬, 거울 같은 것들이었는데 인디언들은 이것을 가지기 위해 온 몸으로 갈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 상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갖다 주고 하찮은 유리 목걸이 같은 걸 받았다. 그것을 위해 체로키 전사들은 1739년부터 1759년까지 쉬지 않고 사냥을 해서 사슴 125만 마리를 잡았다.



그렇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원하는 것들을 많이 얻게 되었는데 인디언들의 행복은 결코 증가하지 않았다. 소유에 대한 성취가 이루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꼈을 테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 기쁨은 한 달에서 일주일, 그리고 다시 하루로 줄어든다. 우리는 소유함으로 인해 증가하는 기쁨이 너무 빨리 소멸되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욕망은 이성을 넘어선다.



결국 인디언 공동체는 욕망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인디언이라고 해서 심리 구조가 우리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는 이제 퇴직한 지 5개월이 되어간다. 맨 먼저 막내 딸이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 위해 새벽 찬바람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 아내가 아침용 쥬스를 만들어 놓은 뒤 바로 옆 아파트로 출근을 한다. 그러면 집에는 나와 바이올린 레슨을 하는 큰 딸이 남는다. 나는 혼자서 스프를 끓이고 견과류를 넣어 쥬스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아침 일정을 시작한다.



최근 블로그 마케팅 원고 작가로 취업이 되어 일주일 째 열심히 오전 알바를 했다. 오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글쓰기 수업 준비를 한다. 아내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주는 내가 기특하다고 자기 월급날 비싼 운동화 한 켤레를 사 주었다.




나는 기뻤다. 지금까지 신고 다녔던 운동화 중에 가장 비쌌다. 단위가 하나 더 올라간 운동화였다. 아내가 묻는다. "아침 운동하러 갈 때 왜 사 준 운동화 안 신어?" 나는 대답한다. "응, 아끼고 있는 중이야. 특별한 날 신어야지." 그래서 나는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 때 비싸고 하얀 운동화를 신고 간다. 아직까지 이 운동화는 내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그래서 당근으로 싸고 좋은 운동화가 있나 싶어, 나이키를 검색해 보았더니 그 뒤로는 인공지능 앱이 온통 운동화만 보여주고 있다. 이미 운동화를 소유하고 있는데, 운동화를 또 검색하는 건 무슨 심리인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더 소유하고 싶어하는 내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구매를 하지 않았으니 그러면 된 거 아니냐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검색을 해본 것만으로 이미 내 욕망은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소유하고 있어도 더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를 통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행복은 결코 소유라는 이름으로 자리하지 않는다.



인디언들은 오히려 자살이 늘었고 알콜중독자가 늘어나 공동체가 분열되었다. 소유는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고 상대와 비교하여 더 비참한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눈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제 운동화는 이 정도 되는 수준이 아니면 안 신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욕망은 그렇게 나를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매일 ‘돈, 돈, 돈’ 하며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전부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화폐경제 역사 연구가 앤드류 가우스는 이것을 ‘의자 앉기 놀이’에 비유한다.



“현 은행 시스템은 아이들의 의자 앉기 놀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은 낙오자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음악이 멈추면 언제나 탈락자가 생깁니다. 의자는 언제나 사람보다 모자라기 때문이죠.”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 EBS 자본주의 제작)



현재 매우 적은 돈으로 한 달씩 생활하고 있다. 5월까지 버틸 수 있도록 설계를 했는데 5월을 넘어 6월까지도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마케팅 원고 작가 부업으로 50만원 정도를 예상하면 넉넉하진 않아도 한 달씩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날마다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일어나 동쪽에서 떠올라 지구를 비쳐주는 생명의 근원인 햇빛을 보며 산책하는 것만큼 행복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은 없다. 날마다 변하는 온갖 식물들의 향연은 내게 가장 큰 기쁨이다. 



그들은 날마다 성장한다.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한다. 물론 무자비한 인간들이 제초 작업을 한다고 칼날을 휘두르면 한순간에 풀밭은 죽음의 공터로 변한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괴롭다. 풀이 무성해지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관청에서 개망초며 소나무며 자라는 것들은 죄다 없애고 있다.



소유는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틈틈이) 운동화를 검색하고, 헤드폰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한다. 저렴하게 사면 이득인 거 아냐? 이런 비논리적인 합리화를 내세우면서. 어쩌다 한 번씩 욕망에 질 때도 있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큰 욕망은 책에 대한 것이다. 신간이 계속 나오니까.... 참기 힘들다. 



행복은 인간에게 절제를 가르쳐 준다.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절제하며 사는 삶. 햇볕을 쬐고 꽃을 보며, 곤충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행복을 충전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을 얻는 즐거움. 그 원동력은 밝은 햇살이다. 그 뿌리는 책을 읽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이다.




공황이 나를 찾아올 때, 나는 얼른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면 나는 생각이 정리되고 차분해진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지만 아직은 한참을 더 먹어야 할 것 같다. 수면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더 행복해지고 있다. 오늘 본 노란 큰금계국처럼 그렇게 더 샛노란 행복을 물들이고 있다. 작고 하얀 고들빼기처럼 하얀 행복을 물들이고 있다. 행복은 내 손에 바깥의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물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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