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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n 25. 2024

(취미가 독서) 14. 꼬꼬독-꼬리를 무는 독서법



[14화. 꼬꼬독-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책들을 찾아 내신 거예요?"

"책을 고르는 특별한 안목이나 기준이 있나요?"



물론 나만의 기준이나 내가 좋아하는 장르, 취향의 작가가 있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사실 잡식성이다. 세상 모든 것에 다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암기로만 공부했던 한을 풀 듯이 장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책을 읽어댄다. 다만 가장 취약점인 수학이나 물리만은 예외다. 과학서는 아무리 대중교양 도서로 나왔다 해도 책 속에 공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니에게 공식은 장애물이다. 나는 그 수식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공식 부분을 건너 뛰고 읽어낸 책들도 다수 있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그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의 책을 다 즐겨 읽는다. 아, 또 있다. 잔혹하거나 호러물, 좀비물 종류도 제외다. 내 성정에 맞지 않는다. 젊은 시절 무협지를 섭렵할 때는 그저 칼만 휘둘러도 몇 사람 목숨이 휙휙 날아갔는데, 그때랑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은가. 다만, 물리에서도 양자역학 분야는 우주천문학과 관련이 있고 우주의 기원과 관련이 있어서 요즘 힘들지만 열심히 읽는 중이다. 최근에 철인 3종 도서 중 하나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었다. 


어쨌든 사람들이 질문하는 '어디서 이렇게 기가 막히게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내는가' 하면, 사실 그건 내가 찾아냈다기보다 다른 작가가 소개해 준 책을 읽는 것이다. 요즘 말로 링크 타고 넘어온 책들이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책에서 저자가 이런저런 책을 읽었노라고 말하기도 하고, 책 속에 좋은 글귀를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기도 한다. 저자들도 모든 글을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만으로 채워 넣을 수가 없다. 누군가의 자료를 참고하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한다. 어떤 작가는 한 페이지를 몽땅 다른 작가의 글을 가져와 싣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눈이 반짝 빛난다. 다른 책을 읽을 명분을 이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일단 액자소설처럼 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다른 작가의 일부를 읽는 병행 독서를 하게 되는데, 액자 작품의 문장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즉시 그 책을 찾아본다.



좋은 작가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작가가 글 속에서 다른 책 소개를 한다. 참 좋은 책이란다. 이러면 나는 백 퍼센트 낚인다. 낚인다,라는 다소 속어 같은 표현을 해서 좀 거시기하지만 나는 작가가 아무 목적없이 드리운 낚시바늘에 꼼짝없이 걸리고 만다. 작가는 결코 낚시줄에 바늘에 매단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달려가서 덥석 물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나는 즉시 독서를 멈추고 그가 추천한 책을 검색한다.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된다. 다 읽고나서 그 책을 찾아보려 하면 어디에서 그 책이나 문장을 언급했는지 찾아내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니 잠시 읽는 걸 중단하고 즉시 판매하는 책인지, 대출 가능한 책인지 검색을 해야 한다. 책을 읽다 중단하는 방법이 불편하면 한편에 메모장을 만들어 두고 책 제목과 저자를 적어둔다. 



만약 판매하는 중이면 즉시 책을 구매 카트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해서 어느 날 그 책은 내게로 선물처럼 다가온다. 내가 사는 책이지만 모든 책은 내게 선물과 같다. 하지만 카트에 책이 많이 담겨 있으면 언제 그 책을 사서 읽을지 알 수는 없다. 강렬할 땐 즉시 주문을 하지만 대개는 그달치 독서 주문이 끝난 상태이므로 다음 달 용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왜 이 책을 카트에 담아놓았지? 하고 까먹을 때가 많다.



만약 책을 검색했는데 이미 오래된 책이어서 절판되었거나 품절로 나타나면 어떨까? 나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공식적으로 나는 그 책을 사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이봐, 후니! 이 책은 절판됐어. 그러니 사볼 수가 없어. 이건 이율배반의 마음이 갈등하는 형국인데, 그 책이 너무 읽고 싶지만 절판되어 볼 수가 없다. 그러니 포기해라. 이 마음은 경제적인 내 사정을 고려한 한쪽 뇌의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쪽 뇌는 그 책을 너무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두 뇌의 싸움 중 어느쪽이 이기는지는 알 수 없다. 후자의 뇌가 이기면 결국 중고시장을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간혹 중고책값이 터무니없이 비쌀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아무리 책 욕심이 있어도 일단 마음을 접는다. 내게는 그 정도까지의 여력은 없다. 다른 쪽 뇌가 강력한 경제 제제를 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기록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수용소 군도>를 읽으면서 솔제니친이 강력 추천하는 책이 나오면 나는 또 그 책을 찾아서 어떤 책인지 훑어 볼 것이다. 이렇게 독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수용소 군도>에 인용된 책 중에 <레닌 전집 중 5권> 같은 책은 사실 구해볼 수도 없고 구해서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다. 그런 판단은 독자인 내가 스스로 한다. 자기와 맞아야 꼬리를 물고 책을 읽어갈 수 있다. 저자가 추천했거나 인용했지만 부득이하게 인용했을 뿐 큰 의미가 없는 소개라면 그냥 넘어가도 무방하다.



만약 내가 다섯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각 책에서 저자가 두 권씩 다른 책의 글을 인용하거나 추천하면 꼬꼬독 책은 금방 열 권으로 늘어난다. 그러니 읽을 책이 없어서 독서를 못하겠다,라는 말은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꼬꼬독을 하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다가도, 간혹 추천 폭탄을 맞는 독서를 할 때가 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추천도서에 겉으로는 즐거우면서도 속으로는 동시에 다 읽지 못하는 데 따른 괴로운 심정의 독서가 된다.



가령, 이어령 선생님에 대한 글이 좋아 그의 책을 찾다가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라는 책을 읽는다고 치자. 그러면 책 자체가 다른 책을 소개하는 책이기에 이건 도둑님이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경찰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에서 이어령은 총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말테의 수기, 탕자 돌아오다, 레미제라블, 파이 이야기. 다행히 나는 여기에서 세 권은 읽었기 때문에 저자의 글만 읽고 공감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읽지 않은 <말테의 수기>와 <탕자, 돌아오다>는 어떤 책인지 구해서 읽어봐야만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독서 내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책의 행렬을 하나의 향연으로 즐기는 것이다. 이 책을 파면 저 책이 나오고, 저 책을 읽으면 이 책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의 책은 다섯 권이니 사실 양호한 편에 속한다. 무서운 건 작가가 자기의 서재를 소개하겠다고 나서는 책에 관한 책을 읽을 때다. 김탁환 소설가의 <읽어가겠다>에는 무려 23권의 책이 나온다. 그나마 그가 소개한 책 중 상당수 읽은 책이 있어 조금의 짐은 덜 수 있지만 독서 초보인 사람은 후덜덜한 책 소개가 될 것이다. 그러다 <세계사를 바꾼 50권의 책>으로 넘어가거나 <100권의 금서> 같은 책으로 넘어가면 혼이 다 빠진다. 




책을 취미로 한다면 꼬꼬독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 마치 화투를 칠 때 바닥에 미리 깔아놓는 카드처럼, 꼬리를 물고 나오는 독서는 기본이란 얘기다. 책을 읽다가 다른 책에 대한 인용글이나 추천하는 글이 나왔는데, 아무런 감정의 소용돌이나 변화 없이 그냥 넘어가는 독자라면 독서 내공이 아주  하수라 할 것이다. 맛있는 아이스크림 신상을 자기만 혼자 먹고 옆에 친구가 있는 데도 먹어보란 소릴 한 번 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 그런 독서는 재미가 없다. 이 사람은 무슨 책을 읽었지? 오, 이 책 좋은데? 이렇게 계속해서 독서는 마지막이 없는 것처럼 이어져야 한다. 그게 독서하는 맛이다. 이어지는 책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어지면 그보다 더 황홀한 단계는 없다. 오, 줄을 서는구나. 그래.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 얼른 이 책 끝내고 널 찾아줄게. 이렇게 기다리는 책들을 살살 어르고 달래면서 책을 읽어가야 한다. 그래야 지금 읽는 책에 대한 재미도 배가 되고, 다음 책에 대한 기대도 배가 된다.



좀더 체계적으로 꼬꼬독을 하려면 꼬꼬독서장을 만들면 좋다.


꼬꼬독서장은 저자와 도서명을 적고 그 책에 어떤 책이 인용되었고 추천되었는지를 적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었는지 그 옆에 적고 또 그 책에서 인용된 책이나 추천하는 책을 적다보면 거대한 책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다.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라고 당당히 밝히고 취미란에 "독서"를 써 넣으려면 이 정도 꼬꼬독은 기본이라는 사실. 명심해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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