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극복하는 법)
모든 사람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정신분석가인 카렌 호나이(Karen Horney)는 "기저불안 basic anxiety을 '자칫 적대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갖는 외롭고 무기력한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철은 '세상을 살고 있는 한 우리는 기본적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의 책 "불안하니까 사람이다"에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사랑받을 자격에 관한 의구심'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문제를 분석하여 낸 결론이니까 '사랑'이 불안의 기저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프로이트가 정신병 환자만을 분석하여 낸 이론으로 일반인까지 일반화시켜 판단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하여 내 불안에 대하여 '사랑의 결핍'으로 단정짓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다분히 크다.
내가 생각하는 불안은 카렌 호나이의 기저불안뿐만 아니라 김현철의 사랑받을 자격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이고 나아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포함한다. 내 불안은 때때로 아무 이유없이 나를 외롭다고 느끼게 하고 세상 일에 아무런 욕심도 생기지 않는 무기력함을 안겨준다.
내 불안은 또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시험 치기 전 날, 밤에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불안을 느낀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반드시 만나야 하지만 초면인 경우 나는 극소심한 상태로 내적 불안에 휩싸인다. 불안감이 커지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배가 살살 아파오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예고된 계획에 차질을 빚게 만든다. 그러나 잘 아는 사람이면 이런 불안은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활발하게 말하며심지어는 호탕한 웃음을 크게 터뜨리고 모임을 리드하며 좌중을 웃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불안은 사랑 받을 자격 없음에 대한 불안이기보다는 내가 한 존재로 정체성을 띠고 두 눈을 마주하며 정면을 주시할 수 없게 만드는 내적 소심함에 따른 불안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 불편하다. 동문회 모임이니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몇 시간씩 떠들어대야 하는 회식 자리 같은 곳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나라는 존재는 없는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있거나 조용히 물 한 잔으로 입술을 축이며 언제 이 시간이 지나가나 하는 것만 기다리는 초조함으로 일관한다.
내 불안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누구나 그런 불안은 가질 수 있겠지만 시작하기에 앞서 아직 시작의 '시'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불안은 과호흡을 일으킨다. 모든 시작에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마음이 진정되던 것처럼, 약물을 먹어야 겨우 가슴을 진정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불안의 정도가 과도한 불안장애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함께 불안 3종세트로 널리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불안한데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내일 모 기업에 가서 회사 대표 자격으로 중요한 회의 발표를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불안이 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게 우선 순위가 맞겠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몸도 곧 던져야 하는 상황을 앞에 두고 있다면 불안은 극도의 상태로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약간의 불안은 가질지언정 그 때문에 아무 일을 하지 못할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지는 않는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함께 앓고 있는 사람은 그 불안 앞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다른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고립된, 철저히 혼자 견뎌내야 하는 초극한의 불안 상황에 직면한다.
나는 공황장애와 불안, 우울증으로 퇴직 이후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불안과 싸우며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왔다. 얼마 전 모 기업에서 면접을 보았고 곧 출근을 해야 한다. 당연히 출근 하기도 전인 며칠 전부터 불안이 나를 감싼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에 조여온다.
어떻게 하면 불안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불안을 극복하는 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쩌면 출근하는 첫날 신경안정제를 먹고 출근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불안으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공황 상태가 나를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내가 자신있게 예측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보다 마음이 건강해졌고 맷집도 단단해졌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아내가 있고, 나를 위해 파이팅을 외쳐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고, 공황장애 뒤에 다시 회사에 출근할 수 있도록 밀어넣고 있는 보이지 않는 창조주가 있기 때문이다.
척추 디스크가 무너지면 근육으로 그걸 버텨내야 한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이미 불안이라는 병이 나를 잠식했다면 내게 근육과 같은 가족과 창조주가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디스크가 스스로 척추를 감내하기 힘들어졌을 때 옆에 있는 근육이 척추를 잡아주어 걷고 뛰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내가 더 단단해지고 더 강해져서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근육과 같은 존재들이 나를 강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저들은 내가 근육의 힘으로 나아가는지, 디스크의 힘으로 나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앞으로 나아가는 현상만 알아차릴 뿐이다.
어떤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다. 스스로 강해져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약하다. 강해 보이는 척 하는 것이지 강하지 않다. 단단해보이는 척하는 것이지 단단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당신에게는 또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불안을 잠재우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잠잠해지게 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고 웃으며 손을 내밀게 한다. 그러면 당신도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촘촘히 엮어 투명한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처럼, 내 불안을 잠재워준 사람들에게 나 역시 그들의 불안을 잠재워주는 블록체인이 된다. 화이팅, 사랑해, 고마워, 힘내, 같은 작고 소소한 말 한마디와 작은 이모티콘이 서로를 연결하는 블록체인이 된다. 사람을 살리는 생명끈이 된다.
나는 아직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