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의 장편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190쪽에서
그러니까 현대의 마법이란 결국 자본이네요. 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하는 법은 없어요.
조금만 더 읽어보자.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저씨는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고, 나는 1초 만에 성숙한 여자가 되는 거죠. 열다섯만 되어도 좋겠는데.”
정말 뚱딴지같은 소리다. 글을 읽어보니 아직 열다섯도 안 된 여자애 같은데, 과연 몇 살 먹은 아이가 이런 소리를 했을까? 책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딸기라는 일곱 살 여자애가 있는데, 그 여자애가 함께 사는 아빠 같은 아저씨에게 하는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어디 현실 세계 속에 있을까마는, 소설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그보다도 일곱 살짜리가 했든 열다섯 살짜리가 했든, 그 말속에 담긴 뜻을 음미하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딸기는 자기가 얼른 커서 자기가 좋아하는 아저씨랑 결혼해서 살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지만,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무척 크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황금만능주의, 물질중심주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돈만 있으면 행복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돈이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 많은 부분 그것은 증명이 가능하다. 아무리 가난이 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고, 또 비참해지는 삶이 되기도 쉽다.
그렇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한 진리다. 돈을 주고 시간을 15년 사버려 1초 만에 열다섯 살이 될 수도 없거니와, 시간을 뒤로 물려 마흔 살에서 스무 살로 돌아갈 수도 없다.
시간은 가장 정직한 그 무엇의 하나로, 이 세상에 남아 있다.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생기고,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약이 되어 잊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시간을 살 수 있는 상품이 나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피부 주름을 없애고 얼굴을, 나이를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고, 계속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시간은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공평한 자원이다. 가장 평등한 자원이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가혹한 선물이다.
한때 나도 어서 시간이 흘러가서 얼른 어른이 되기를, 어른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하며 간구할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새 시속 50킬로미터로 달려가는 인생이 되어 자녀들을, 젊은이들을 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언제나 세상은 젊은 청춘들의 것이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 그렇게 시간은 스르르 방문을 닫고 잠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니 늘 시간마다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얼마나 즐거워했는가. 솔직히 오늘은 덥다고 불평을 많이 했다. 날씨에게 미안하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인간에게 미래, 희망, 내일 같은 말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지만, 만약 온다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공유하면서 행복하게 아껴 써야겠다. 곧 내일이 온다.
(『봄부신 날』 시인, 요나단 이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