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툇마루에서 고양이와 함께 햇볕 쬐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왜 그 고양이는 해변에 갖다 버려야 했을까?
왜 나는 그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그건 -고양이가 우리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 지금도 하나의 수수께끼다. (16)
저도 어렸을 때 같은 기억이 있어요.
까만 고양이가 우리집을 자기 집으로 삼아 마당을 어슬렁거렸죠
어머니는 고양이는 못 키운다고 멀리 가서 버리고 오라고 했어요. 초등학생 때 일입니다.
두 번이나 버리고 온 나보다 고양이가 먼저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함께 가서 도둑고양이를 버리고 왔던 동생도 깜짝 놀랐지요. 그저 놀랐다는 말을 넘어서 충격과 공포, 외경스러운 두려움 같은 것이 생겨났어요.
두 번째는 골목을 돌고 돌아 녀석이 기억하지 못하도록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하고 10여 분 걸리는 거리를 가서 두고 왔거든요. 우리를 따라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우리보다 먼저 집으로 뛰어들어간 것일까요.
녀석은 우리가 기르던 고양이가 아니었고 그날 처음 우리집 담벼락에 있는 걸 발견한 길고양이였어요. 당시에는 길고양이라는 말이 없었고 다들 '도둑고양이'라고 불렀어요.
어머니도 깜짝 놀라면서 이번에는 정말 찾아오지 못하도록 아주 아주 멀리 가서 놔두고 오라고 하셨죠. 그래서 우리는 거의 30분 가량을 걸어가서 사람들이 많은 시장통에 두고 왔어요.
동생과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두근 반 세근 반 떨리는 심장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설마 이번에도 돌아와 있지는 않겠지.
다행히 고양이는 그 후로 다시는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요.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그 고양이가 우리집을 찾아 오면 좋겠다는 이중 감정을 가졌어요. 왠지 내 고양이 같은 그런 느낌.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어요.
이 글을 쓰면서 그 고양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마음에 조금 슬퍼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려서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고, 너무 까만 고양이라서 귀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건 정말 슬픈 일임에 틀림 없어요.
어린 시절, 가끔씩 부모님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하곤 했죠.
그런 말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듣다 보면, 정말 나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인가, 하고 그 말을 믿고 싶을 때가 있어요.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서러웠던 감정들.
까만 고양이도 약간은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나도 지금까지 그때의 감정이 남아 있는데.....
그때 고양이는 진짜로 버려졌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