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밝은
[마음 말리기]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최은영, 밝은 밤, 14쪽)
소설을 읽는 데 토끼가 용궁에 가서 간을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전래동화가 떠올랐다. 마음이 장기라면 정말 어디에 있을까? 가슴에 있을까, 뇌에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마음은 우리 몸 어디에도 없다. 뼈, 근육, 혈액, 장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우리를 제어하는 그 무엇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기에 우리는 마음이 점점 까매지는 것을 느낀다. 순백의 마음이 한해 두해 살다보면 때가 끼인다. 세상 물정을 알게 되고, 몇 번 치이고 뒤로 밀리다 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이렇게 순진하게 살다간 평생 당하고만 살겠구나. 속에 응어리가 지면서 마음은 조금씩 둔탁한 색으로 변하며 딱딱해진다. 갓 쪄낸 따뜻하고 하얀 순두부 같았던 마음은 서서히 차가워진다. 몽글몽글 귀엽던 알갱이들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은 새까만 돌멩이가 된다.
슬픈 사실은, 소설 속 글처럼 마음이 우리 몸속 장기가 아니기 때문에, 물로 씻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햇빛에 널어놓고 일광욕을 시키며 말릴 수 없다는 것이다. 광합성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은 내가 삼키는 울음, 분노, 절망, 미움 같은 것들로 계속 계속 덧입혀져, 이제는 억센 솔로 벅벅 문질러도 벗겨지지 않을 만큼 두터워져 있는 것이다.
그래도 만약, 생명이 탄생한 이래 한 번도 쉬지 않고 숨가쁘게 나를 살리고 있는 심장이 마음이라면, 하고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일 년에 한 번씩 12월31일이 밤 12시가 되면 심장을 정지시키고 잠시 숨을 멈추고, 깨끗하게 심장을 씻어 말리고 싶다. 그래서 다음해 1월1일 0시에 새로운 심장으로 새롭게 포맷된 심장으로 새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연말이 되니까, 올 한 해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마감되고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공황장애로 퇴사하고 칩거하고, 글을 쓰고, 다시 이렇게 직장에 다니게 된 순간들이 모두 먼 과거의 일로만 느껴진다.
생각만이라도 내 마음 꺼내어 따뜻한 햇살에 말려보고 싶다.
다시 처음, 어린아이의 순백함, 첫 생명의 환희,
그러한 것들로 채워놓고 싶다.
잠시 심장을 끄고 고요히 눈을 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