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꼬리 단상 26> 과감히 끊어낼 때

메이플라워, 165쪽

by 봄부신 날

"전년에 맺은 협정에 따르면 브래드퍼드는 죄인인 스콴토를 마사소이트 추장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하지만 필그림 입장에서는 아무리 사악한 배신자여도 소중한 통역자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브래드퍼드에게 스콴토는 이미 단순한 통역자가 아니었다. 브래드퍼드가 총독이 되면서 그의 인디언 통역자도 자연스럽게 플리머스 공동체의 일부분으로 스며들었고 둘 사이의 유대감은 이미 영적인 수준이었다. 브래드퍼드는 포카노케트 족의 대표 추장의 격노를 사는 한이 있어도 스콴토를 지킬 결심이었다."

(메이 플라워, 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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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플라워>는 영국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위해 아메리카로 들어간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의 미국 정착기 이야기입니다. 메이 플라워를 타고 아메리카에 내린 그들은 이미 절반이 죽어 60여 명 수준에 불과했고, 주변의 인디언들때문에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인디언들도 청교도들이 해변에 정착하려고 하자 예전에 영국 배로부터 혼이 난 경험이 있어 이들을 경계합니다. 사실 인디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토에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무단으로 침입하여 정착하며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사태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때 포카토케트 인디언족에게 오래 전 전투에서 영국인을 붙잡아 노예로 만든 스콴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인디언들은 노예 영국인인 스콴토를 인디언과 청교도, 두 공동체 사이의 통역자로 이용하게 됩니다.


청교도들은 마사소이트족과 우호협정을 맺으면서 인디언에게 죄인인 스콴토를 1년 뒤에 돌려주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총독이 된 브래드퍼드는 인디언 족과의 소통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약속 기한이 지나도 스콴토를 놓아주지 못합니다. 불행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합니다. 책에서 브래드퍼드와 스콴토는 영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박근혜와 최순실의 두 이름이 겹쳐졌습니다. 브래드퍼드 입장에서는 도움을 위해 잠시 필요했던 통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청교도 공동체에 스며들게 되고 지도자는 그의 도움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제 지도자는 통역자 없이는 아무 일도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지도자는 그를 내치지 못하고, 인디언에게 불이익을 받을 것을 감수하면서 그를 지키려고 합니다. 이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최순실을 끊어내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비난 받을 것을 감수하고 그를 지키려고 하는 박근혜와 닮아 있습니다.


메이 플라워에서 통역자 스콴토는 총독이 된 브래드퍼드와의 영적 유대감을 자신의 권력으로 인식하고 브래드퍼드 몰래 자기의 영역을 늘이고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합니다. 그 일은 1년이나 지난 뒤에 밝혀지게 됩니다. 현재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역시 빙산의 일각이지만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아닌 것을 아니다, 잘라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끌어안고 갈 때, 고인 물은 썩고 냄새나고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도덕적 관념과 선악의 개념과 '뭣이 중한디'의 가치관의 불명료함이 자신을 지배하게 되고, 양심은 끊임없는 자기 합리화로 고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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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과감하게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번쯤 눈 감아주는 일.

그것이 눈사태를 불러 일으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부정하고 불의한 것은 과감하게 끊어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관례였다고,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해 왔다고 변명하지 맙시다.


아닌 것은 아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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