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의 "브루클린의 소녀", 376쪽
(기욤 뮈소의 "브루클린의 소녀", 376쪽)
정말 그럴까요? 안타깝게도 특별한 촛불이 횃불로 번져 타오르지 않는 한,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돈이 곧 실력이 되고, 권력이 곧 능력이 되는 세상입니다. 정유라가 그랬다죠. 돈 있는 것도 실력이라고. 그래서일까요? 모 대기업에 대한 영장청구는 기각되었고, 유전무죄라는 말이 다시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무죄라는 말은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소설 속에서는 마지막 반전이 있고, 대부분 정의가 승리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래야 카타르시스가 해소되고 더 많은 독자들이 돈을 내고 책을 사서 읽을 테니까요.
해피엔딩이 되지 않는 소설이나 영화는, 다 읽고 나서, 다 보고 나서, 뭔가 중요한 일을 까먹었거나, 하루 종일 찜찜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 나아가 분노에 가득찬 상태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불행한 사태 속에 놓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가는 상업적 흥행을 염두에 꼭 두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영적인 양심과 진리의 외침 앞에, 가능한 정의가 승리하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야 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야만 하죠. 왜냐하면 우리 대부분은 약자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블랙리스트.
사실, 저도 블랙리스트에 적혔던 사람입니다.
저도 국내 굴지의 S그룹,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바로 그 회사에 다닐 때, 그룹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그룹 본사에 근무하던 아버지 친구분의 자제가 아버지에게 알려주었죠. 그룹 비서실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돌리고 있는데 아드님 이름이 올라와 있어 깜짝 놀랐다며, 아들 관리 잘 하라구요. 찍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요. (지금도 그런 거 만들어 돌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때도 그런 건 없었다고 딱 잡아떼겠지만요.)
그 회사는 알려진 대로 노조가 없었고 대신 노사화합 기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입사 3년차 정도 되었을 때 연구소 대표 대의원이 되어 1년간 활동을 했었습니다. 저는 제 기준과 양심에 비추어 정의롭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발언들을 했고, 잘못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손을 들어 바르게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정당하고 바르다고 생각한 그 발언들은 회의가 끝나는 즉시 인사팀으로 보고 되었고(정말 신기했죠) 결국 그룹 차원의 요주의 인물로 찍히고 말았습니다. 물론 회사 인사팀에서는 승진 누락 등의 협박을 연구소장, 담당 부장에게까지 하며 전방위 압박을 해대었습니다. 직원 관리 잘하라는 말에 부장은 겁에 질려 안절부절하며 저를 못마땅했지만, 연구소장님은 개인적으로 불러 소신껏 행동하라며 힘을 실어 주었죠. 그리고 그때 정치가 무엇인지, 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 조금, 아주 조금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실 대학생 때도 그 흔한 데모 한번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그야말로 정치니 운동이니 뭘 모르던, 오직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던 범생이 수준이었는데, 회사에서 한순간에 강성 운동권 직원이 되었습니다. 자랑스런 대기업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명예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는 개인적이고 신앙적인 양심에 반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인 정의에 기초한 기준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해석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권력이 법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거대한 권력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권력에 빌붙는 사람들도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양심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신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최소한의 이성과 최소한의 양심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시민에 의한, 시민이 이룬 촛불이 훼손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촛불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그 가녀린 외침처럼, 촛불의 외침이 찬겨울 북풍에 휩쓸려 나가지 않길 소망합니다.
촛불이 하나하나 모이면 거대한 횃불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촛불은 일말의 바람에도 꺼질 수 있지만, 또 어떤 촛불들은 비바람에도 더 단단히 결속하고 들불처럼 번져나가 꺼지지 않는 정의가 되기도 합니다.
촛불은 여전히 약한 자입니다. 촛불이 여전히 밤하늘을 수놓고 있을 때, 아이들의 손에 들린 촛불들이 스스로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진실은 허물을 벗고 약자의 편에 설 것입니다. 약자인 당신 가슴속에도 여리지만, 희망을 씨앗으로 간직한 촛볼 하나, 생명처럼 심어보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약자편인 신의 손이 우리 가슴에 얹혀져 어쩌면 가슴이 따뜻해질지도 모릅니다.
소위 작가라면서, 이번에 만 명 가까운 블랙리스트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다니, 저는 다소 부끄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문학인으로서 활동을 그만큼 활동하지 않은 탓도 있고, 제가 그다지 영향을 끼칠만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너는 어느 편이냐고 굳이 물어본다면” 저는 정의편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약자편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님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로마에서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면,
예수님은 어쩌면 명단 제일 위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