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꼬리 단상 37> 싫어도 해야 하는 일

밑바닥, 16쪽

by 봄부신 날

모든 방안을 고려해 본 듯 잠시 후 아버지는 나와 톰에게 총을 꺼내다가 불쌍한 토비를 숲으로 데려가서 고통을 끝내주라고 했다.

"네가 그랬으면 해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야."

"네. 아버지."

내가 대답했지만, 등 부러진 토비처럼 목에서 간신히 기어나오는 목소리였다.

(밑바닥,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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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사냥개였던 토비는 썩은 나뭇가지에 등이 맞으면서 등이 부러져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열두 살 아들에게 토비를 숲으로 데려가서 총으로 죽이라고 합니다.


1933년 당시 텍사스에서는 아이들이 총과 함께 자라났다고 합니다. 총은 괭이나 쟁기같은 생활의 일부였고 총을 존중하도록 교육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 같았던 토비를 제 손으로 죽이는, 그것도 열두 살 된 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살다 보면,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취향이 맞지 않고, 역겨운 일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어린 시절, 아플 때 약을 먹는 일은 얼마나 고역이었는지요.


어른들은 커다란 숟가락에 물을 붓고,

하얀 종이에 들어 있는 가루약 한 봉지를 탈탈 털어 희부옇게 만듭니다.

그런 다음 새끼 손가락이나 젓가락으로 휘저어 가루약이 물과 섞이도록 합니다.

그렇게 물과 혼연일체가 된 약은 커다란 숟가락에 담겨 입 앞으로 전진해 옵니다.


얼마나 공포스럽던지요.

코를 막고 약을 꿀꺽 삼켜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쓴 기운 때문에 언제나 사탕 하나를 옆에 놓고 냉큼 입에 넣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약의 쓴맛은 사탕의 단맛을 이기고도 남아 언제나 인상을 찌푸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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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쓰다고 약을 안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아야 했으니까요.


마음이 아프지만, 눈을 꼭 감고,

방아쇠를 당겨야 합니다.

내 속에 자라고 있는 죽음의 세포들을 죽여야 합니다.

조직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악의 세포들을 찾아내어 없애야 합니다.

칼로 도려내야 합니다.


당장은 아프고,

쓰라리고,

피도 나고,

힘들겠지만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죽어서 고여 있는 검은 피는

다 뽑아내야 합니다.


오늘은

칼을 들고

내 안에 자라고 있는 나쁜 세포를 찾아 봅시다.


그리고

그리고

두 눈 질끈 감고

큰 숨 한 번 뿜어내고

이를 악문 뒤

과감하게 도려냅시다.


가벼워집시다.

투명해집시다.

비로소 나다워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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