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서 좋다, 23쪽
고양이는 내 삶을 통째로 바꾸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쓰레기 더미에서 걸어나오는 녀석들을 보면
미칠 것만 같은 감정이 요동치는데,
그런 마음을 사소하게 받아 들이지 않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너라서 좋다, 23쪽)
이 책의 작가는 길고양이들이 길에서 배척당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합니다. 그냥 '힘들겠구나'로 끝낸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심만 한 게 아니라 바로 '실천'에 옮깁니다.
그 실천의 결과물의 하나로, 어느새 그 이야기가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상황입니다. 별로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그녀는 고양이와 운명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백수로 지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날, 평소에도 늘 보던 고양이가 어제와 고양이와 다른 고양이로 쑥 가슴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길 위에 사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이나 굶은 건지 어깨와 꼬리를 바닥까지 떨어뜨리고는 쓰레기 더미를 등지고 걸어나오는 고양이 한 마리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고 이내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다."
시작은 그랬다.
'얼마나 배고플까' (22쪽)
저자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힘없이 돌아나오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면서, 그 속에서 자아를 발견한 것입니다. 쓰레기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고양이가 바로 자기 자신의 처량한 상태를 재현해주는 것처럼 보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길고양이들의 집사가 되기 시작했고, 두 마리는 직접 집으로 데려와 애완묘가 아닌 반려묘로 같이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다가 이 책을,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와 함께 쓰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와 함께 살았더니 그 고양이가 직업을 갖게 해준 거라고나 할까요.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샙니다만,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첫 문장에 있습니다.
얼마나 명징한 표현인지요.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꾼 게 고작 '고양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고작'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그러나 그 수단, 또는 방법 아니 대상이 고양이라는 것보다는, 두 번째 이어지는 글.
'삶을 통째로'가 얼마나 파괴력 높은 글인지요.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세계의 역사가 예수라는 인물 한 사람으로 인해 BC와 AD로 구분되는 것처럼, 내 삶이 어떤 것을 계기로 완전히 뒤바뀌고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가 확실히 구분되는 시계열적인 단절을 갖고 있나요?
아직 그런 게 없다면, 2017년 3월, 내 삶을 통째로 바꿀 사건을 기도해보는 건 어떤가요? 혹시 내 삶을 통째로 바꾼 책은 없었나요? 인물은 없었나요?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바꾼 그 사람이 되지는 않았나요?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도 우리 삶은 통째로 바뀌는데 말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고양이 한 마리만도 못한 존재는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