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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Dec 02. 2021

로와 애를 겪었으니, 이제 희와 락만 남았다.

희로애락




블로그를 하게 된 지 어언 1개월. 많을 때는 천 명, 적을 때는 칠백 명 정도 들어온다. 친구들과의 먹부림 일상을 차근차근 기록해 쌓아 나가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올린 포스팅 몇 개가 차츰차츰 손님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일 방문자수 200명이 되었을 즈음, ‘어라? 한 번 제대로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내 낡고 오래된 블로그를 재정비했다. 블로그 스킨을 수정해서 마치 인스타처럼 사진만 크게 보일 수 있도록 바꿨다. 지저분했던 카테고리도 깔끔하게 분류해 손을 봤다.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 인터넷으로 몇 가지 핵심 무료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고 나름대로 키워드를 연구해서 하루에 한 개씩 포스팅했다. 집순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이곳저곳을 탐방하느라 몹시 바빴다. 음식은 갓 만들어져 따뜻한 상태로 테이블 위에 세팅되자마자 입에 넣어야지만 셰프에게도 음식에게도 예의라고 주장했던 내가, 친구들에게 제발 일단 한 숟갈도 대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며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내 이루어진 완벽한 변화였다.


블로그는 나날이 고유의 양식을 정립해 나갔다. 귀여운 토끼 모양의 디지털 스티커도 사서 본문에 붙이고, 필수 정보라고 생각되는 꿀팁들을 한 데 모아 상세하게 표현했다. 정성을 쏟은 탓인지 갈수록 포스팅을 읽는 사람이 늘고 점차 재미가 붙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사진의 화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카메라 성능이 몹시도 좋다는 아이폰으로 찍고 있지만, 핸드폰은 역시 한계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특유의 화사한 색감 덕분에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인 캐논 사의 입문용 미러리스를 검색했다. 한두 시간 정도 서칭 하다 보니 가격도 외관도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발견했는데, 더 무엇을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현금 박치기로 결제해 버렸다. 아직 별다른 수입도 없는 블로그인데 이렇게 투자를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랬다. 나중에 카메라가 없어서 좋은 협찬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거다. 적당히 합리화하며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배송을 기다렸다. 택배 주문이라 걱정을 참 많이 했는데, 그랬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뽁뽁이에 안전하게 싸여서 무탈하고 얌전히 주문한 지 단 이틀 만에 배송되었다. 무려 다음날이 경기 지역 루프탑 레스토랑 디너 코스 협찬 예약일이었기 때문에 타이밍도 미친 듯이 좋았다. 나는 설명서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내 소중한 첫 카메라의 초기 설정을 마쳤고, 유튜브 설명 영상을 시청하며 넥스트랩도 야무지게 달았고, 액정보호필름까지도 기포 하나 없이 꼼꼼하게 붙였다. 배터리도 full로 충전했다. 내 하얀색 카메라는 하나의 잘 정제된 무기와도 같았다.


다음날 나는 루프탑 레스토랑에 꼭 알맞은 치장을 하고서 차가운 도시의 여자처럼 어깨 한쪽에 카메라를 살짝 걸치고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불행의 전조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불운의 요정은 음침하기 짝이 없어서 아무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오곤 한다. 그걸 세월과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지하철 플랫폼에서 카메라는 갑자기 어깨 라인을 따라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다. 가만히 서 있었으면 모르는데 시간에 쫓겨 빠르게 걷고 있던 중이라 상황은 다소 심각했다. 찰파닥 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내 발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거의 3초 동안, 떨어뜨린 카메라가 당장에 내 시야와 뇌리에 박히지 않아서 마치 봤으나 보지 못 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섭게 엄습해오는 깨달음. 와, 이거 제대로 떨어뜨렸는데?


너무 당황하면 오히려 차분해지는 사람이 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아예 도피해 버리는 방어 기제인지, 아니면 이제는 성숙한 성인이기에 어느 정도의 삶의 파란을 견뎌내고 해결할 방도를 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어서 그런 것인지, 정확히 콕 집어 선택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 아주 침착하고 신속하게 카메라를 주워 들고 그곳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한 30분 정도 지나자 그제야 헛웃음이 나왔다. 살펴보니 모서리 끄트머리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겼다. 마치 내 다리 하나 자른 것처럼 너무나도 속상했지만… 열린 서비스센터가 없는 주말이기도 하고, 약속된 일정이 있으니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기능적으로 망가진 부분은 없었는지 협찬을 위한 사진은 잘 찍었고, 광고주가 만족스러워할 만한 포스팅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하루가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더 이상 어깨 위에 자리 잡을 일이 없었다. 그저 내 일자로 휜 목 위에서 무겁고도 고집스럽게 대롱거릴 뿐.


월요일에 출근 후 주간업무회의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상사께 양해를 구한 후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서 전체적인 점검을 신청했다. 수리에는 2~3일이 걸린다고 했다. 비싼 돈 주고 산 카메라를 하루아침에 깨 먹은 나, 모처럼 예뻐해 주는 주인 만난 줄 알았는데 정식으로 개시도 하기 전에 병원행 한 카메라. 둘 중에 누가 더 불쌍할까? 참,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고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싶어서 어이없이 웃었던 에피소드다. 인스타 스토리에 서비스센터 접수증과 함께 짤막하게 사연을 올리니 그걸 본 친구들이 죄다 “참 너 다워서 웃기다”라고 해서, 더 어이없었다는 후문(난 그다지 덜렁거리는 편이 아닌데?).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야말로 우리 상무님의 명언 “희로애락 중 로와 애를 벌써 치렀으니 앞으로는 그 녀석과 희와 락만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라는 말이 전적으로 머리와 가슴에 와닿았다는 거다. 나는 이 위안에서 내 첫 카메라와 함께 보낼 시간의 즐거움을 미리 맛보았다. 그래, 어찌 됐든 너는 나의 하나뿐인 카메라이니, 앞으로 나와 함께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것을 담아보자. 이제는 최대한 안 떨어뜨리도록 할게. 내 안타까운 미러리스에게 심심한 사과를 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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