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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Dec 04. 2022

나는 몇 번의 정리를 더 해야 할까

자조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했다. 낡고 닳은 헌옷을 버리고 묵은 노트를 버리고 빛바랜 사진들을 한데 모아 고이 찢어서 버렸다. 이 모든 것은 오래 전의 나였다. 하나하나 꾹꾹 기록해 놓은 나의 파편들은 계절이 두세차례 지나면 내 손아귀에 의해 버려지곤 했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도 불행한 일이 또 있나. 나는 내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았다. 버려진 기억은 오히려 점차 명징해진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문득 사고를 덮쳐올 때마다 기분은 거센 파도처럼 요동치며 숨을 틀어막는다. 그런 날은 끝끝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신있게 말한다. 네! 저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는 듯 행동한다. 구태여 내 손으로 버린 것들, 앞으로의 인생에서 전혀 중요치 않았다며 존재의 무가치함을 어떻게든 증명해 내려고 한다. 우습게도 그것이 허세라는 건 나도 타인도 알고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어리고 미성숙한 사람이고 그것은 숨길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있다.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오히려 아무것도 버리질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도 무의미한 정리를 몇 번이나 더 해야 할까. 이제는 필요없다며 뒤안길에 내던져 버린 나의 시간들. 후회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기어코 후회를 이끌고 올라와 아득바득 마음을 짓이기고 마는 나의 이기적인 선택과 결정들.

어서 이 시간도 지나가길 바란다. 내 시간이 어서 빨리 소모되기를 바란다. 부디 이 모든 것들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 바쁘게 살아야겠다. 어떻게든 나를 채워야겠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지만 어쩌겠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나를 어쩔 수 없는 기분은 이제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진심으로 안타깝다. 나한테서 나를 도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 감정은 그저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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