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2023.10.31(화)의 단상 ; 불을 끄지 못한 밤들의 기록
지난가을에 재회 후 올해가 다 가도록 연락이 드물었던 친구 하나가 대뜸 묻는다.
"뭔 일 있어? 꿈에서 슬퍼하길래."
내 아버지의 단점과 비슷한 성향의 아버지를 둔 이 친구는 몇 년 전에 암으로 어머니를 먼저 보냈는데,
이 친구의 어머니 장례식에 가서는 삼십 대 초반도 채 되지 않았던 젊은이(나보다 다섯 살 아래이다) 입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말을 들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눈시울이 시큰해진 채로 문상객을 맞이하던 이 친구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그런 말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우리 엄마도 그냥 좀 일찍 가셨을 뿐이야.
그 말이 어른스럽게 느껴지다가도 한편으론 얼마나 안쓰럽던지. 반면에 그 덕에 죽음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계기가 된 것도 있다.
"아, 잘 지냈니. 지난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너한텐 일부러 말 안 했어. 연락 안 한 지도 오래됐고."
그 친구의 꿈에서 나는 카페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더랬다. 나도 가끔 그런 류의 꿈을 꾸긴 하지만, 대성통곡이라는 단어가 지난주의 나와 너무 맞아떨어져서 이 친구가 내 꿈을 꿨다는 상황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바쁜 와중에 지난주의 내 상황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가. 솔직히 말하자면 서울로 돌아와서는 소등을 다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든다. 빛 한줄기 새지 않아야 잠에 드는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불을 다 끄고 잠드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서울로 돌아온 첫날에는 마치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남성이 나를 향해 인사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와 마주 보고 있는 꿈을 꿨다. 남성은 네이비색 옷에 얼굴이 좀 얽어져 있었는데, 어쩐지 화상을 입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 장지에서 화장할 때 아버지의 얼굴이 뭔가 잘 안된 건가 싶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화장절차를 위해 장지로 가는 동안 엄마가 그런 지문을 줬다. 아버지 화장하러 보낼 때 아빠, 집에 불났어요! 나오세요!라고 외치라고.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가르쳐주신 거라는데 상황만 아니면 그저 흥미롭게 흘려들을만한 얘깃거리일지도 모른다. 장례지도사들도 고인을 향한 예를 갖추면 될 일이지 굳이 그런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아버지를 보내는 길 내내 영정사진을 들었던 나는 이미 산사람이 아닌 아버지로부터 모종의 교감이라도 하는 듯이 내내 혼잣말로 아버지가 가야 할 길을 달래듯이 중얼거렸고, 장지에서는 아버지의 관을 화장터로 떠나보내며 엄마가 알려준 문장 대신에 아빠, 길 잘 찾아가고 꿈에 한 번 나와. 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믿거나 말거나.
내 꿈에 나온 남성이 아버지라면 이왕 멀끔한 모습이면 좋을 텐데.
그냥 나는 아직 아버지 꿈을 꾸지 않은 것으로 하련다. 아버지의 피안길이 순조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