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기록 007

디깅-2023.10.28(토)의 단상 ; 남겨진 자리에서 쓰는 기록

by 요나윤

아버지의 삼우재까지 마치고 서울로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쓴다.


하루 세 개씩 담배에 불을 붙이고 타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삼우재까지 아버지의 혼백을 기리며, 문득 발인날의 일이 떠올랐다. 운구차 기사님의 배려로 집안까지 잠깐 들어올 수 있었던 그날, 내가 든 아버지의 영정사진으로 네 가족이 다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내밀한 사연이야 어쨌든 아버지의 말버릇 중 하나는 이제야 우리 네 식구가 다 모였네였고 나는 별스럽지 않게 여겼다. 별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마당을 지나 현관을 들어서고, 거실에 들어와 안방부터 둘러보기까지 아버지의 장례식 내내 나는 마치 아버지의 어떤 전달이라도 받는 느낌이었다.


운구차 이동 중에는 내내 아버지를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울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후로 엄마가 면회 갈 때마다 엄마에게 물어봤다던 집에 언제 가냐는 질문은 아버지 사후에야 가능하게 된 작금의 현실에 심경이 묘해지기라도 했는지, 안방을 거쳐 내방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주저앉아서는 말 그대로 오열하고 말았다.


오장육부가 다 흔들려 목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한 몇 초간 울고 나니 그 울음이 내 울음인지 이제야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울음인지 분간할 길은 없지만. 아버지에 대한 애정보다 애증의 기억으로 토하듯이 울어내고서는 마지막으로 볕이 잘 드는 동생방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현관으로 나왔다.



마당과 이어진 현관은 아버지가 담배를 즐겨 태우던 자리였는데 어쩐지 그냥 가고 싶지 않아서 담배 한 대만 태울 수 없겠냐고 했고 기사님은 일단 그러라고 했다. 서둘러 동생이 아버지용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고, 나는 현관의 난간에 걸터앉아 담배가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장례식장이 있던 마산과 부모님 댁이 있는 창원은(장례식장이 있던 마산과 창원은 운전으로 불과 한 시간 안팎의 거리이다. 덧붙이자면 2010년에 마산시, 창원시, 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었다) 일주일 내내 날씨가 아주 좋았다. 불을 피워도 연소가 안될 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그 순간만큼은, 담배가 많이 타지 않았다. 우리는 아버지가 어지간히도 집에서 떠나기 아쉬운가 보다 싶었다.


영정사진이 집안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순간 엄마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어느 가정이든 밝히지 못할 내밀한 가정사야 없을까만, 내가 여태껏 엄마에게서 들어온 이야기들과 내가 겪은 아버지는 내가 결혼에 뜻이 없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면교사의 역할이 되어 역으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며 이삼 인 이상의 가정을 꾸릴 수도 있었겠지만, 자기 합리화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라고 반문할 정도로 아버지는 나에게 남성의 롤모델로서는 최악인 사람이었다. 남성에 대한 낮은 기대치(?)는 이후 내가 사회에 나와 만나서 겪은 "좋은" 혹은 "덜 나쁜" 남성들을 통해 갱신되어 갔다.



아버지는 처자식보다 늘 당신의 동생들이 중요한 사람이었다는데 만약 엄마가 "대가 센"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 남매는 과연 어떤 환경에서 자랐을지 아찔할 정도다.

(우리 남매의 사주팔자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는 않아서 "잘 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 적어도 나는 내 기운이 세고 동생은 팔자에 귀인이 제 역할을 다 해줘서. 믿거나 말거나)


내가 젖먹이일 때 아버지가 엄마의 기를 죽이겠다며 시누이까지 합세해서 날 엄마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되려 엄마가


"야, 그래. 어디 한번 니들이 그 애 데려가서 키워봐라. 남편복 없는 년이 자식복은 있겠냐?!"


라고 호통쳤다는 이야기는 아주 최악이었다. 문까지 잠갔더니 몇 발자국 안 가서 다시 돌아오더라는 뒷얘기까지.


젖먹이 자식으로 자신의 아내를 협박하던 내 아버지의 쓰레기 같은 짓을 밝히는 이 글이, 심지어 그의 딸인 나로서는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을지 몰라도.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돌아가신 것이 남은 엄마를 향한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딱히 내가 부끄럽게 여기고 숨겨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오는 12월 10일은 아버지의 49재 회향날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사자에게 서를 읽어줌으로써 망자가 다음 생에 축생이나 미물로 태어나지 말고, 인간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극락으로 갈 수 있게 인도하는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극락으로 가는 길까지는 49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산자들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아버지의 영가가 부디 탁한 기운 다 씻어내고 좋은 곳에서 평안을 되찾길 자식으로서 바라는 마지막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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