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2023.11.27(월)의 단상 - 비우는 중
별렀던 주방을 정리했다. 실평수 열 평도 안 되는 원룸에서 주방이라고 해봤자 가로세로 30센티미터 싱크대 하나, 500리터(잘 모르겠다, 솔직히 냉장고는 이것보다 더 작아도 될 것 같다. 무소음에 외관이 이쁜 것으로) 도시가스를 쓰는 화구 두 개짜리 가스레인지가 방 한구석을 차지하는 단출한 구성이지만 오히려 단출해서 한두 개 쌓아두기 시작하면 더 번잡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일하는 곳에서는 가끔 현물로 뭔가가 들어오는데 이곳은 1인가구에 대한 이해도가 별로 없어서(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그다지...) 그런지 나 같은 1인가구에게 들어오는 귤 5킬로짜리 한 박스나 김, 식용유 세트 등의 식품 선물들은 부담스럽다. 특히 내가 잘 안 먹거나 좋아하지 않아서 소비가 더딘 식품이면(청국장 이런 거...) 아무리 고급스럽게 포장해 놓더라도 처치가 곤란해서 받아도 짐스러운 것들이 더러 있다. 의도치 않게 나눔 등의 "착한 일"을 하게 하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한달까. 그마저도 식용유 같은 건 너무 흔해서 나눈다고 해도 반응이 시원찮다.
여하튼 오늘은 정말 벼르고 있어서 정시퇴근 후에 한의원까지 다녀오고서 바로 움직였다. 대충 저녁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고 쌓아둔 것들을 들어내고 버리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닐봉지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환경오염의 주범이 나로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존재하는 일 자체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라니.
어쨌거나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는데도 마음 한 곳이 허전한 기분이다. 정신없이 바빠도 이따금 스멀스멀 거리며 번지는 상실감이 금세 나를 뒤덮는 기분이다. 덮으라면 덮으라지. 당분간은 좀 침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겨울은 좀 웅크리고 있어도 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