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일 파일럿 여행1: 에게해 파로스 섬

파로스, 바다와 노을 속 여유

by 최연


나는 지금 101일의 파일럿 여행 중이다. 101일은 이제까지 내가 한 여행 중 가장 긴 여행이다. 그런데 이 여행을 ‘파일럿’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여행은 앞으로 5년간 내 행보를 위한 나침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엇을 할지, 그리고 내 속도를 알아가는 여행이 될 것이다.



파로스를 향한 여정


그리스 섬에 대한 로망은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언젠가는 그리스 섬에서 며칠을 머물러 보리라 생각했다.


섬은 많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다가 파로스라는 섬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 피레우스 항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 그곳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에어비앤비 숙소 사진이었다. 해지는 발코니에 와인잔이 놓인 풍경이 담겨 있었다. 노을의 빛깔과 바다 위 윤슬이 아름다워,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떨지 궁금했다.


피레우스 항구 2터미널에서 떠난 배는 여러 섬을 거쳐 파로스에 도착했다. 안내 방송이 불분명해서 내릴 곳을 놓칠까 봐 내내 긴장해야 했다. 드디어 내린 파로스는 7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지글거리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알리키는 항구에서 떨어져 있어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성수기에만 운행하는 버스라 구글맵에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버스를 찾았고, 마치 20세기로 타임슬립한 듯 폰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나를 발견했다.



낯선 곳에서의 작은 모험


버스를 타자마자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알리키에 가는지 재차 확인하고, 도착하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언제 내릴지 몰라 계속 창밖을 보고 사람들을 살피며 기사님도 바라봤다. 중간중간 그리스어로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나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시골 완행 버스처럼 곳곳에 서던 버스는 드디어 ‘알리키 센터’라는 곳에 나를 내려주고 쌩하고 가버렸다. 모든 것이 낯설어 바다와 집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숙소 주인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니, 이제 그곳을 찾아야 한다. 가방을 끌며 기웃거리다가 숙소 쪽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바다를 선물한 숙소


숙소는 바다 바로 앞이었다. 발코니는 사진 그대로였고, 배들이 정박해 있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에게해는 너무 맑아 속이 다 보일 정도였다. 강물이나 호수처럼 투명했다. 무엇보다 매혹적인 건 침대에 누워서도 이 모든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파란 문과 바람에 하늘거리는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그야말로 평화를 선물했다.



바다멍과 명상


숙소에 도착한 후 생긴 취미는 ‘바다멍’이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 나는 계속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몰과 일출, 드나드는 배들과 바다까지, 그곳에서의 모든 시간을 바다를 보거나 바다에 들어가며 보냈다. 아침에는 바다를 끼고 러닝을 하고, 에게해에 들어가 보았다. 얕은 수심은 물놀이하기에 딱 좋았다. 너무 투명한 바다에 물을 찍어 먹어보기도 했다. 물론 짰다. 속으로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그곳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일몰이다. 붉던 하늘빛이 서서히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하늘과 산, 바다가 조금씩 어둠 속으로 잠기는 시간. 나는 그 속에 같이 잠기며 명상의 상태에 이른다. 오직 그 순간, 그 자체만 내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 시간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냥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섬도 아니고 그리스 섬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에게해 파로스섬만 그럴까? 더 많은 장소가 가능성을 가지고 내게 다가와 질문을 던진다. 그 해답을 찾아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