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화장실에 없는 두 가지, 빈센트와 나무늘보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르고 후련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오는데, 옆자리 선배님이, 혹은 팀장님이 줄을 서고 계시다면? 다시 문을 잠그고 변기에 앉아 냄새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요. 선배님과 팀장님의 생리적 욕구도 지켜드려야 하니까요. 이럴 때 푸푸리를 사용해 보세요! 떠나는 뒷모습까지도 향기롭고 싶다면, 주머니에 쏙, 똥 냄새와 섞여 꾸리꾸리한 향기를 만드는 어쭙잖은 방향제와는 달라요! 똥 싸기 전 한 두 번의 ‘칙칙’으로 똥 냄새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답니다. 잠시만요. 아, 죄송하지만 푸푸리는 단순히 똥 냄새를 막아 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향제거든요. 아쉽게도 푸푸리가 막지 못하는 냄새도 있답니다.
첫 번째로 이별의 냄새입니다.
누군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칸으로 돌진한 다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면 이 칸에서는 이별이 배설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쏴아쏴아 폭포 소리 혹은 끙끙 줄다리기 하는 소리, 퐁당 퐁당 돌을 던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싱싱 풀어라’ 휴지 푸는 소리에 ‘휑휑 풀어라’코 푸는 소리가 들린다면 백프로지요. 첫 번째 배설이 풍기는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한 번의 배설로 욕구가 사그러들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욕구의 시작이거나 과정일 수는 있지만 끝은 아니랍니다. 장에 가스가 차서 방귀를 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쿠루루룽 쾅쾅, 배속에서 가스가 부글부글 끓다가 팡! 터질 때가 있지요. 이별의 폭발은 방귀와 달라서 어쭙잖게 참으면 대장에서만 그치지 않지요. 눈으로 나오고 코로 나오고, 입맛도 잃고 심하면 열병을 앓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이별의 냄새가 너무 짙어 화장실에서의 배설로도 끝이 나지 않는다면, 반차나 반반차 찬스를 써서 이별을 추가적으로 뿜어 줘야 합니다. 이별의 배설이 남긴 휴유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세요.
용백 : (용백, 빨갛게 충혈된 눈을 들이밀며, 코맹맹이 소리로) “파트장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몸이 너무 아파서 급하게 병원을 가야할 것 같습니다. 반차 써도 될까요?”
두 번째로 수면의 냄새입니다.
화장실에서 이루어지는 수면의 배설은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흔들어 줍니다. 사물함에 쟁여 놓은 젤리를 까 먹고, 껌을 씹어도 계속해서 잠이 온다면 휴게실에 가 잠을 청합니다. 혹여 너무 깊이 잠들까봐 타이머를 맞춰 놓습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아닐까 눈치가 보이지만, 정신부터 차려야 하니 20분 정도가 적당하겠군요. 이런, 안마 의자는 모두 찼네요. 어쩔 수 없이 리클라이너에 누워 잠을 청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옵니다. 회의실에서, 자료실에서, 계단 벽에 기대 잠을 청하고 산책을 다녀와도 졸음이 가시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찾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화장실은 수면을 배설하기에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닙니다. 우선 모두가 푸푸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또 회사 변기에 비데가 붙어 있다면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집니다. 비데가 달린 변기는 뚜껑과 벽 사이의 틈이 매우 넓어서 뒤로 기대기가 어렵고 또 앉는 면의 기울기가 일반적인 변기보다 높아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무책임한 말일 수 있지만 화장실에서 수면을 위한 적절한 자세를 찾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밖에는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화장실 칸마다 넓이와 폭, 변기의 기울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건투를 빕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팁을 하나 드리자면, 변기에 앉았을 때 뚜껑은 꼭 닫으세요. 무엇을 싸기 위한 이유가 아닌 채 변기에 앉으면 밑이 뚫린 그 허함이 상당히 불편하거든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푸푸리가 막지 못하는 새로운 냄새도 등장했어요. 바로 주식 냄새입니다.
푸푸리가 막지 못하는 냄새 중 가장 생산적이고 개선의 의지가 담긴 배설이지요.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하다가 퇴사 욕구가 치솟을 때가 있어요. 위 선배에게 치이고 아래 후배에게 치일 때, 이상하게 상황이 꼬여서 모든 것이 내 탓이 될 때! 우리는 사내 메신저의 오아시스 ‘동기들과의 단톡방’을 찾습니다. “아 언니, 억울하겠다 유,유” 라거나, “헐, 진짜. 나는 그래서 팀장님한테 메시지가 오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린다니까.” “그래 팀장님이 유난히 욕심이 많으시고 급하시지. 원래 안 그러셨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드나 봐.” 하지만 가끔은 동기들의 위로와 공감만으로는 내 심장을 지피는 불길을 사로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꺾은 선 그래프가 내 시선처럼 위를 향하기를 염원하며 화장실 천장을 한 번 올려다 봅니다. 앱을 켭니다. 후......, 퇴사의 욕망이 타오르는 불은 껐는데 새로운 근심 거리가 생겼네요. 믿을 만한 친구에게 전해 들은 믿을 만한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못되나 봅니다. 누구를 탓하겠어요. 판단과 선택을 한 건 그 친구도 아니고 팀장님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인걸요. 이렇게 잃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홈런을 칠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 열심히 출근하고, 팀장님께 제 잘못을 빌어야죠, 뭐, 별 수 있나요.
쇼핑 냄새도 있어요.
기술이 발전하며 생겨난 새로운 배설이지만, 주식은 내 통장을 채우기 위한, 쇼핑은 통장을 비우기 위한 배설이라는 차이점이 있지요. 쇼핑을 위한 배설은 주로 월급을 받는 날이나 보너스를 받는 날 많이 일어납니다. 점심 시간이나 퇴근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을 때, 지금 당장 내 통장을 비우겠다는 급하고 간절한 욕구가 동반하는 배설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패 확률이 높은 배설이기도 합니다. 월급을 받으면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야겠다는 행복한 상상만 하다가, 막상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 멈칫하게 됩니다. 그리고 긴 사유가 시작되지요. 이 구매 행위가 정말 내 생존에 필요한 일이 맞나? 이 배설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생존과 행복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화장실에서 금욕의 스토아가 될 수 있고 쾌락의 에피쿠로스가 될 수 있습니다. 역설로 만들어지는 배설인 만큼 가장 생명력있고 다채로운 배설이지요. 물론 제가 말한 금욕이란 것이 핸드폰 소액 결제, 카드 값, 축의금, 부모님 선물을 비롯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금욕이란 것은 짚어 주어야 하겠지만요.
앞서 화장실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배설의 유형을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은 배설을 할 때 가장 당연해지지만 애석하게도 가장 취약해집니다. 퀜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픽션>에 나오는 막강한 살인청부업자 "빈센트 베가"를 기억하시나요? 빈센트는 똥을 싸면서 즉 배설 도중 잡지를 읽는 여유를 부리다가 총에 맞아 죽습니다. 잡지를 읽을 틈이 어디 있나요....... 빈센트가 우리처럼 '누가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귀를 쫑긋하거나, '다음 사람에게 내 똥 냄새를 허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한 번 싸고 물 내리고 두 번 싸고 또 내리는 그 최소한의 긴장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뜨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푸푸리로 똥 냄새를 가리고자 하는 마음도 실은 나의 취약했던 순간을 남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싶네요.
나무늘보는 일주일에 한 번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와 똥을 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똥을 눌 때 맹수들에게 가장 많이 잡아 먹힌다고 해요. 그냥 나무 위에서 똥을 싸 땅으로 똥을 떨어뜨리면 안되나 의아하지만, 우리가 쾌적한 사무실을 놔두고 화장실을 찾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맹수들도 다른 동물들을 냅두고 왜 똥을 싸고 있는 나무늘보를 먹으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늘보의 똥에 푸푸리처럼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걸까요?
각설하고 오만방자한 빈센트처럼 화장실에서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면, 나무늘보처럼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그럴 때 추천드려요! 다른 층 화장실이요. '아직 많이 참을 수 있다.' 하신다면 옆 건물 화장실도 추천드릴게요. 적어도 나의 취약함이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는 않을 거예요. 앗! 푸푸리가 필요없겠다구요? 에이~ 그래도 다른 층 사람들과 이웃 건물 사람들을 위해 매너 하자구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