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지난 10년 동안 치열하게 경쟁했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번 사고로 삶과 죽음이 불과 0.01초 사이에 갈라진다는 것을 체득했다.
직장 생활에서 승진, 동료들과 경쟁에서 승리, 근거 없는 자존심 등 그동안 삶의 목표로 착각했던 것들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넘쳐나는 병원에서의 시간을 김형석 교수의〈고독이라는 병〉〈영원과 사랑의 대화〉등과 이어령 교수의〈흙 속에 저 바람 속에〉등을 읽었다.
자기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사실 앞에 인생의 무상함도 느꼈다. 생각지도 아니했던 본부장과의 불편을 해소하고, 한 번쯤 삶을 관조하고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근무 시간 외에는 바다낚시를 즐기면서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동해안 쪽 지사에서 근무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입원한 지가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총무과장이 오랜만에 애매한 표정으로 병실을 찾아왔다. 선오는 걱정거리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모른 척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총무과장에게 먼저 말했다.
“아직은 불편하기는 해도 이젠 대소변과 식사도 혼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네. 그래서 주치의에게 퇴원해서 통원 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할 참이네. 또 특별히 치료받는 것도 없고 답답해서 그러네. 안 그래도 과장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잘 왔네.”
총무과장과는 입사 동기였다.
“그래, 차도가 있다니 정말 다행이네. 괜찮다면 그것도 한 방법은 되겠네, 여의찮으면 진단 기간이 남았으니 다시 입원해도 될 것 같고….”
총무과장도 걱정이 사라진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만, 내가 바로 사무실로 출근해서 일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기도 그렇고... 퇴원해도 몇 달은 재활 치료와 요양을 더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맡은 일이 어영부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동해안에 있는 어느 지사에 가서 일하고 싶네. 아마 본부장님도 과장이 잘 말씀드리면 허락하실 것 같아. 아무튼 부탁하네.”
총무과장은 찾아간 본인의 의도를 벌써 간파하고 선수를 치다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그러나 시치미를 뚝 떼고 놀라운 척했다.
“자네 지금 한 말이 진심이야! 자네답게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하는 말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