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오는 속으로 ‘이거 선수들끼리 왜 이래’ 하고 싶었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본부장은 강선오 대리와 대면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로 생각했다. 그러려면 강 대리를 다른 지사로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회장이 모범 사례로 포상까지 추천한 사원을 함부로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자칫하면 회장에게 반항하는 꼴이 되어 오히려 본인이 더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강선오 대리가 원하는 자리로 보내주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떠보려고 총무과장을 병실로 보냈다는 것을 강 대리는 이미 예상하였다. 강선오 대리도 본부장의 뜻을 따르면서 본인의 꿈이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본부장과 강선오 대리의 목적은 확연히 달랐지만, 묘하게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되었다.
다음날, 총무과장으로부터 강 대리와의 만남 결과를 보고 받은 본부장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강선오 대리가 원하는 날짜에 자리가 비어 있는 영덕지사 부 지사장으로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다른 말하지 못하게 ‘인사이동 신청서’ 비슷한 근거 자료라도 만들어 두라고 지시했다. 부 지사장 자리는 통상 퇴직을 앞두고 잠시 대기하는 비중 없는 한직이었다.
총무과장은 강 대리의 직속상관인 기획부장에게 인사 계획을 알려 주었다. 기획부장은 즉시 기획실장에게 보고하여 함께 본부장을 찾아갔다. 기획부장이 용기를 내어 건의했다.
“본부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지역 본부에서는 ‘특별보고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보고서 작성은 강선오 대리가 전담해 왔습니다. 전임 본부장님의 엄명으로 저나 실장님도 관여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 작성 관련 자료나 사본도 전혀 보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임 본부장과 강선오 대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당장 다른 사람이 대신하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강 대리 인사를 다시 한번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 대리 없다고 보고서 작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되오. 유능한 부장과 실장이 있는데 무슨 문제요? 더 유능한 직원을 선발해서 오면 될 일을 걱정해요.”
본부장이 가볍게 면박은 주었지만, 강선오 대리만큼 회장 맞춤형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직원이 없다는 것은 모르지 않았다.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상황 판단력으로 회장의 방침과 관심 사항을 정확히 파악하여 창의적인 대안 제시와 그에 따라 회장이 지시할 사항까지 미리 만들어 제공하는 보고서는 단연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