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ke green Jul 08. 2021

어떻게 생각해?

빰 빰빰빰빰~토요명화의 의미

최신 개봉 영화라니요?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집을 떠날 때까지 우리 집에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었다. 동네에서 그걸 가진 집은 진료소와 현아네 고작 두 집뿐이었고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려면 차를 타고 30분 넘게 꼬불 길을 지나 읍내에 가야 했다. 영화관은 한 시간 넘는 거리의 진주 시내까지 가야 했는데 다 떠나서 그런 경험이 없는 나는 애초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개봉박두, 최신 개봉작 이런 말은 먼 세계의 낯선  단어일 뿐이었다.


 아빠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다. 물론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게 뉴스와 바둑도 좋아했지만… 농번기에도 영화 프로는 놓치지 않았다. 현실을 벗어난 환상의 세계, 새로운 철학과 이상, 신나는 액션. 영화는 종류도 다양했다. 꿈을 꾸는 듯 빠져드는 그 시간들이 아빠에게는 고단함을 달래주는 피로회복제 같았을 거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먼 세계의 영화관이 아니라 영화는 온전히 이 세계의 작은 티비속에 있었다. 맥가이버도 육백만 불의 사나이도…

 그런 아빠를 닮아 우리 형제들도 자연스럽게 영화를 자주 보게 되었다. 물론 먼 세계의 영화관이 아닌 티비로 방영되던 것 만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영화의 전부였지만 말이다. [할아버지가 늘 말씀하시는] 맥가이버, 손목에 시계를 그리고서는 “키트”를 소환하게 만들던 전격 z작전, 훈남 래밍턴 스틸, 초능력자끼리 연애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소머즈 육백만 불의 사나이 같은 주말 외화시리즈는 물론이고 밤이 되면 시작하는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이하 토요명화로 통일)도 즐겨보았다.


경계의 시간 속 토요명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요명화를 보는 것은 주말을 알리는 의식 같았다. 농사에 주말이 있을 리 없으니 아빠에게 토요일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지만 토요명화는 그것을 구분 짓게 만들어준다. 경계의 시간. 똑같은 매일을 일곱으로 나누고, 네 번의 일곱을 한 달로 묶어 일 년을 만들어 간다.


 불이 꺼진 깜깜한 방에서 왕왕대는 작은 텔레비전. 그 앞에서 누군가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이내 잠이 들고 누군가는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빰 빰빰빰빰 빰빰빰빰 따라라~”

익숙한 시그널이 시작되면 나는 아빠의 팔을 차지하고 누워 종일 밭에, 논에 빼앗겼던 그를 되찾아온 안도감을 만끽했다.(물론 그 팔이 내 전용이 아니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바보선언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이라는 묘한 느낌의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어렸고, 그때도 이 영화는 조금 오래된 듯했다. 채널 선택권을 가진 아빠의 취향에 따라 보게 된 이 영화는 재미도 없었고 이상한 기계음과 화면처리가 불편했었다. 뒤척거려가며 억지로 영화를 보다 중간중간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아빠~~ 다른 거 보자~~”


 왜일까?

 분명 누워서 뒤척대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을 향해 갈 때 나는 앉아 있었다. 속에서 뭐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에 멀미 같은 것도 느꼈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들쳐업었다 놨다 안았다 춤을 췄다 하는 장면이 기묘하고 충격적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인상적이었던 건가? 동칠이와 육덕이가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고 천진한 어린아이의 내레이션이 나와도 전혀 밝아지지 않던 기분. 그들이 모여 웃고 추는 춤에서 느껴지는 우울한 기분에 묵직하게 눌려 그날은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선의 첫 블랙코미디(라고 다 커서야 생각한 거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청불이었다. 아빠 나는 재워줬어야 하지 않아요? 아마 그때의 아빠도 나만큼이나 이 영화에 푹 빠져버렸던 거 같다.

여전히 그때처럼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영화에 대한 내 느낌인지, 아니면 어린 날의 그 기분에 대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채널을 돌리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는 그 내용에 대한 내 이해가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확실히 이해 못했던 사회의 부조리, 계층 간의 불평등, 성상품화… 아주 사회 비판이 가득 담긴 영화가 아닌가… 영화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그때처럼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영화에 대한 내 느낌인지, 아니면 어린 날의 그 기분에 대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뜬금없이 궁금해졌다. 아빠는 그때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왜 안 잘까 우리 딸은~ 하며 팔 위에 있는 내 머리를 내려놓을 기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땠어요?’


궁금할 때 전화해서 그거 생각나냐고 물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12시 넘어 예의도 없이 전화하는 건 니뿐이라고 혼이 나도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의 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