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의 대전환
팬데믹은 전 세계 기업들의 일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갑작스러운 재택근무 전환은 혼란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일하는 방식의 대전환을 불러왔다.
원격·재택근무는 더 이상 임시방편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소프트 인프라**가 되었다.
기업들은 재빠르게 대응했다. 데스크톱은 노트북으로 교체되었고, 협업 툴과 화상회의 시스템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사무실은 ‘근무하는 곳’에서 ‘협업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직원들은 사무실과 집, 카페, 심지어 해외에서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일하는 방식은 **‘시간과 장소의 제약’에서 ‘성과와 협업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한국의 풍경은 달랐다. 팬데믹 당시 Digital Workplace 전환과 관련된 컨설팅을 몇 차례 진행했었는데, 기업들은 ‘일하는 방식의 전환’보다 ‘시스템을 빨리 구축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재택근무는 일시적 특혜처럼 인식되었고, 일부 관리자들은 팬데믹을 단지 불운한 사건으로만 여겼다.
팬데믹이 끝나자 모두들 다시 회사로 향했고, 바뀐 것은 없었다.
팬데믹 후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갔을 때 느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무실은 개인 책상보다 회의실이 많았고, 곳곳에 화상회의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직원들은 그날의 업무에 맞는 자리를 선택해 앉았고, 헤드셋을 끼고 전 세계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협업하고 있었다.
출근 첫날 이후, 나는 굳이 사무실에 나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업무는 가상공간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오피스와 재택근무의 경계는 사실상 사라져 있었다.
이 차이가 얼마나 뚜렷했는지는, 내가 겪었던 몇 가지 장면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스페인 출신의 동료 한 명은 자녀가 셋, 그중에는 갓난아기도 있었다.
그는 주 1회 사무실에 출근했다. 주로 팀 미팅이나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다른 날은 재택근무가 원칙이었다. 화면 속으로 아이가 불쑥 등장하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아마 그는 아침마다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점심에는 부인과 짧게 대화하며,
저녁에는 퇴근 대신 아이들과 놀며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업무시간 틈틈이 갓난아기를 안아주기도 했을 것이다.
혹시 그의 업무가 느슨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전혀 아니다.
관리자로서 그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관리했고, 시차가 다른 동료들과 협업하기 위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일을 할 때도 있었다. 핵심은 절대적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설계, 즉 **유연하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었다.
오래 전 호주에서 보았던 ‘저녁 9시 2라운드’ 일상이 이제 가상공간으로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호주 출신의 한 동료가 있었다. 싱가포르 소속이었지만, 출산휴가 기간 동안 호주의 부모님 집에 머물렀다.
사업부 리드였던 그녀는 휴가 중에도 완전히 일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회사와 합의해 일주일에 이틀 정도, 반나절씩 필수적인 업무만 처리하기로 했다.
당시 나는 그녀가 리드하는 사업부와 관련된 제안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지연되면서 일정이 늦춰졌다. 결국 회사는 같은 사업부의 인도 근무 매니저를 배정해 그녀의 의사결정을 지원했다.
고객의 불만과 복잡도가 높아진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시간을 내어 기여하는 모습은 오히려 성의로 받아들여졌다.
복귀 후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사무실 근처로 이사했고,
집과 사무실을 오가며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했다.
출산과 육아는 커리어 단절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가상업무 공간은 오히려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는 전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 장소와 관계없이 전 세계 곳곳의 인재와 협업한다. 동남아는 물론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원격근무를 업무의 한 형태로 인정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근무하는 동료는 일주일에 하루 사무실 근무를 하는 것으로 스스로 정했다고 했다. 사무실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없지만, 혹시 오피스가 어딨는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오피스로 간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한국기업과 프로젝트를 할 때 이 문제로 논쟁이 있었다. 고객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한국에서 일을 할 것을 고집했다. 심지어 인도의 개발자들이 몇 주간 상주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프로젝트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인도 개발자는 Offshore 근무가 회사 운영정책이었고, 특히 매니저 레벨은 파트타임으로 투입이 일반적이라 특정 프로젝트에 상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객만족이 최우선이지만, 정책을 벗어나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회사 내에서는 필수적으로 상주해야 할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온사이트 요구는 프로젝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이는 결국 고객사의 정리되지 않은 이슈를 수행사에 떠넘기려는 인상을 줬다.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는 고객의 이슈는 고객이 해결해야 한다.
외부 역량이나 인력이 필요하다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프로젝트의 관리자는 호주출신의 젊은 직원이었는데, 맞벌이 부부에 갓난 아들이 있었다. 재택근무를 기반으로 부부가 업무일정을 조정해 가며 함께 육아와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장기간 출장은 불가능했고, 그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온사이트가 조건이라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완강했고, 회사도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이런 비합리적인 요구는 결국 인재의 이탈로 이어지고, 프로젝트 성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AI 혁명으로 전 세계는 인재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이 지금의 일하는 방식을 고집한다면, **유능한 인재는 계속해서 이탈하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질 것이다.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상업무 환경은 특혜가 아니라 필수적인 소프트 인프라이며, 기업의 생존 전략이다. 우리는 이미 뒤처져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다시 과거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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