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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뭐부터 공부해야 하죠?

우리들이 심리학을 놓지 못하는 이유

심리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무엇부터 공부하면 좋을까요?



  심리학 강연을 다니면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심리학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취미 삼아 소소히 알아가고 싶다는 분,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공부의 깊이가 부족해서 대학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분, 직장인 신분으로 틈틈이 심리학을 공부하여 인생 제 2막을 열고 싶다는 분 등 그야말로 다양한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궁금증은 심리학 전공자로서, 그리고 심리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으로서 무척 반가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분 한 분에게 성심성의껏 조언을 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제 메일로 이런저런 심리학에 대한 궁금증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어, 저는 밤사이 온 메일들에 답변을 드리는 것으로 대개 하루를 시작하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제게 물어오시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추천하실만한 심리학 책이 있나요? 어떤 책으로 공부를 시작하면 좋을까요?



  그랬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어떤 책을 통해 심리학을 배워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계십니다. 전공서적을 무작정 사들고 읽자니 가격도, 두께도 부담 그 자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일단 쉽고 재미있게 쓰인 심리학 교양서적은 어떠하냐고 여쭤보니, 그런 책들은 말랑말랑해서 읽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한다 하면 폼나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나 <정신분석강의> 정도는 읽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지요. 저는 문득 고개를 들어 질문해주신 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부릅뜬 눈에는 심리학을 배우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자세는 경직되었고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의 의지에 걸맞지 않은, 약간 맥 빠진 듯한(?) 답변을 드리곤 합니다.



끌리는 책부터 읽어보세요. 심리학 서가로 가셔서, 마음에 드는 제목을 찾으세요.



  심리학은 대중들의 인식, 그리고 실제 학문 영역 간의 괴리가 심한 학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중들이 흔히 심리학, 하면 독심술이나 심리테스트 등을 떠올리는 것과 다르게 실제 심리학 전공서적들을 보면 온갖 수식과 그래프, 그리고 뇌구조 사진이 빽빽하다는 사실, 이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야기이지요. 오죽하면 학자들이 다루는 심리학과는 별개의 학문이다, 하여 '대중심리학(pop psychology)'이라 하는 명칭이 별도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미 어떤 각오(?)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습니다. '심리학이 내가 알던 심리학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어.', '무엇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아야겠다.' 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과 대중심리학 간의 거리는 십중팔구 그들이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 될 거란 사실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향기를 맡을 수도, 맛을 볼 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머리와 심장 어딘가에 있긴 있다고,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대상을 '과학적으로' 다루어야 하니 어떻게 생각해봐도 심리학은 만만한 학문이 아닙니다. 복잡하고, 또 복잡합니다. 섬세하고, 깐깐함이 극에 달한 나머지 연구자들의 기대를 툭하면 배반하고 마는, 그런 학문이지요. 그래서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노라면 막막함에 막막함이 더해집니다. 시원한 결론이 없어 고구마 한 가득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합니다. 오래도록 씨름해도 연구 성과는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논문이 게재되어 뿌듯했다가도 이내 돌아서면 허탈감이 찾아듭니다. '고작 저 한 줄의 가설을 위해 수개월, 수년을 달려온 것인가?' 논문의 산에 파묻혀 있을 때면 이따금씩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 '도대체 이게 어디가 재미가 있지?'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하면, 심리학을 앞에 두고 사색할 일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재미있는 심리학 연구들을 찾아 기웃거리거나, 심리테스트에 신기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심리학이란 힘겹게 파고들어가야 할 대상이지, 가볍게 맛보고 음미할 대상이 아니었음을 문득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심리학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심리학을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걸까요? 연구하는 일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축복받았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즐거운 순간은 잠시, 대개의 시간들을 고통과 막막함 속에서 보냅니다. 논문 읽기도 귀찮고, 실험도 귀찮습니다. 분석은 지극히 어렵고, 논문을 쓰자니 부담스러워 자꾸만 미룹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심리학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심리학에 대해, 첫눈에 반했던 그 경험을 잊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범죄심리, 프로파일링에 매료되어 심리학을 처음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언제까지고 들여다보고, 돌봐주고 싶어 심리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복종'에 대한 인간 심리를 다룬 어느 심리학자의 연구가 폼나 보여서 덜컥 심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영화 '엑스페리먼트'에도 나온,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 반해 심리학을 택한 사람도 있습니다. 평소 강박증이나 우울증 등으로 고통을 받던 차에 심리학을 만나 그것을 이겨냈다며 심리학에 자신을 헌신하기로 다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은 심리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던, 어느 책의 한 구절에 깊게 매료된 나머지 심리학을 하게 되었노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리학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첫인상을 먼저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상적인 실험도 좋고, 존경할 만한 심리학자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던 주제에 관한, 그러나 쉽고 재미있게 쓰인 책들을 먼저 보십시오. 그것이 없다면 언젠가 심리학이 여러분을 힘들게 할 때, 여러분은 망설임 없이 심리학과의 이별을 준비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을 파고들었을 때에야 얻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섬세한 통찰들을 바로 눈 앞에 둔 채로 말이죠. 그 한 발자국을 더 내딛지 못했던 것을 아마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그러니 일단은 심리학에서 재미를 찾고, 감동을 찾으십시오. 심리학이 밉다가도 이내 황홀했던 첫인상의 기억을 되새기며, '정 때문에라도 심리학과 못 헤어지겠다.'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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