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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그거 받아서 뭐하나요?

심리상담의 제 역할에 대한 소고

심리상담? 그거 받아서 뭐하나요? 그런다고 당장 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요.



  심리상담의 효용성을 의심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당장 애인이 생기는 것도, 일자리가 생기는 것도, 내가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하는 상사가 짐을 싸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 그들은 내게 '고인물 논리'를 가지고 와 자신의 이야기에 힘을 싣는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취업난, 저성장 등 사회 자체가 썩어 고인 물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안에서 발버둥 쳐봐야 그 물에 오염되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심리상담가를 만나 백날 '괜찮다', '괜찮다' 하고 힐링되어봐야 당장 처한 암울한 현실 그 자체가 바뀌지 않는데 결국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말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공격적인 태세를 살짝 억누르고 심리상담에 대한 나름의 긍정적 견해들을 꺼내기도 한다. '심리상담?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 진로 탐색이나 성격 이해에도 도움을 주고, 스트레스 등의 증상을 가라앉혀주는 역할을 하니까.' 그러면서도 이야기의 마무리는 역시 '고인물 논리'다. 가령 심리상담을 통해 직장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부정적 정서들을 단기적으로는 내보낼 수 있어도 어차피 다음날 되면 또 그 직장에 가야 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들에 또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장 내 조직 구조가 개선되거나, 말도 안 되는 지시들로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짐을 싸지 않는 이상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심리상담은 미봉책,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심리상담은 내담자가 처한 현실 그 자체를 바꿔주는 것에는 한계를 보인다. 심리상담사가 정책담당자이거나 학교나 기업 등 기관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는 아니니, 당장 내담자를 취업/이직시켜준다거나, 승진시켜준다거나, 돈을 잘 벌게 해준다거나, 원하는 사람을 사귈 수 있도록 해준다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쩌면 내담자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심리학적인 차원에서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사회 내 각종 제도적/구조적 병폐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수반되어야 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경제적 혜택이나 제도적 혜택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부여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당장 배가 고프고, 하루하루가 위험하다면 일단 살아남고 볼 일이다.


  심리상담가들도 이 점에 대해 크게 부인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으며 심리적 개입과 더불어 현실적인 개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담가들 가운데에는 국민들의 심리적 고통들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현실에 주목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목소리를 내려는 이들도 있다. 정책 입안 및 결정 과정에 심리학적인 견해가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하고, 세월호 참사 등 국가적인 재난이 닥쳤을 때 '재난심리위원회'를 조직화하여 심리 응급 처치 서비스를 진행하는 한편, 평시에도 재난-트라우마 대비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도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심리상담이 당장, 내담자가 처한 현실 그 자체를 바꿔줄 수 없다 해서 그것이 곧 심리상담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리상담가는 심리상담가로서 해야 할 고유의 역할이 있고, 따라서 그 역할 범위를 넘어선 수준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정적인 노력은 행정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정치적인 노력은 정치인에게, 노동환경이나 인사 등의 문제는 기업 내 의사결정자들의 올바른 판단과 대처에 맡겨야 한다. 굳이 심리상담가들에게까지 가혹하게 요구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심리상담의 목적과 역할은 무엇일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심리상담은 내담자가 가진 심리적 자원을 발견토록 하고, 관리토록 하며, 키워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려운 현실이 닥쳤을 때 내담자가 무너지지 않도록, 다시 일어서서 어려운 현실과 힘껏 부딪쳐가며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심리상담 장면에서 강조되는 자아존중감(self-esteem), 자기효능감(self-efficacy), 탄력성(resilience), 통제감(controllability), 긍정 정서(positive emotion),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 등은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심리상담가들이 내담자에게 제안할 수 있는 솔루션들이다. 또한 심리상담은 인지적 차원에서, 내담자들이 처한 현실을 왜곡하여 바라보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모든 일들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했던가, 스트레스나 공포, 불안, 우울, 무기력 등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사건들 대부분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지적 해석 결과에 따라 해당 사건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여부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왜곡된 마음의 틀(frame)을 가진 사람들은 긍정적 사건을 덜 긍정적인 사건으로 지각한다. 스스로의 노력과 통제감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기보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부정적 사건은 더 부정적인 사건으로 지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사건만은 아닌데,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 더 나은 행보를 위한 쓰디쓴 교훈으로 남길 수도 있는 것을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심리상담은 여러분의 '맷집'을 키워준다. 썩어 고인 물에 있으면서도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부패하지 않도록, 단단히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그리고 나아가 썩어 고인 물을 모두 빼내고 깨끗한 물을 대신 채워갈 수 있도록, 사회 속으로 적극적으로 걸어 나아가도록 용기를 줄 수 있다. 심리상담은 여러분 누구나가 가지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심리적 자원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가꾸어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런 이유로 여러분은 심리상담을 통해 보다 강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내면의 온갖 어지러움들을 다스리는 한편, 세상을 왜곡시켜 바라보지 않도록. '자기 알기'를 통해 적성과 흥미에 맞는 미래를 주도적으로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삶의 만족이나 주관적 안녕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돈이 채워주지 못하는 행복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건강하게 뭉칠 수 있도록, 그래서 궁극적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도록. 심리상담의 역할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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