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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시장 경쟁은 '공멸'을 부른다

심리학의 현주소를 돌아보며

  학계에 남아 연구 활동을 계속하는 심리학자가 있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그로부터 얻어진 결과물을 학술논문이나 보고서 등의 기록으로 남긴다. 한편, 학계를 떠나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심리학계에서 생산되는 심리학 연구 내용들을, 심리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중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늘 궁리하는 사람들이다. 대중과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심리학 전문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심리학 이야기들을 전달한다. 책, 웹툰, 드라마, 영화, 동영상, 강연, 방송 등 각각의 매체가 가진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대중들이 심리학에 보다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심리학을 배우거나 심리학 관련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유도하여 돈을 번다.


  심리학의 세계에도 나름의 '시장'이 존재한다. 학교나 연구소 등에 남아 연구 활동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세상 밖으로 나와 심리학을 상품화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심리학을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유용성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한편, 어떻게 하면 심리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러다 보면, 마찬가지로 심리학을 세상 밖으로 들고 나온 또 다른 이들을 마주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해에 출판되는 심리학 책만 해도 과연 몇 권이나 될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학교나 기업 등 기관 내 심리상담센터에 취직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자신의 이름을 건 사설 상담소를 개설하는 전문가들 또한 많다. 유튜브에 '심리학'을 검색하면 심리학 관련 컨텐츠가 쏟아지고, 힐링, 자존감, 공감, 소통, 치유 등을 주제로 내 건 심리학 관련 강연들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심리학 시장 역시 다른 시장들 못지않게 치열하기 그지없다. 밖으로 나온 심리학 전문가들은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맛보기 위해, 두 번의 산을 넘어야만 한다. '심리학이 뭐지? 심리학이 밥 먹여주나? 심리학, 그거 그냥 독심술 주장하는 사기 아냐?' 등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 그리고 그러한 오해를 벗기고 심리학의 가치와 효용을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동종업계 경쟁자들. 여러모로 심리학을 가지고 먹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한편, 심리학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심리학을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심리학 컨텐츠를 일단 내어 놓기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겠지, 하고 나이브한 생각에 빠져 있다. 하지만 심리학도 자본주의 시대의 '상품'의 하나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른 업계, 다른 분야의 '상품'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심리학만 잘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경영학, 경제학도 알아야 하고, 각종 마케팅 기법도 알아야 한다. 사회 트렌드에 명민한 감각 또한 필수다.


  그러나 이따금씩 생각해보건대 지금 현시점에서, 과연 심리학으로 먹고살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나의 경쟁 상대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들과의 경쟁은 필수 불가결한 것인가? 무릇 경쟁의 끝에는 패자와 승자가 남게 되기 마련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다른 누군가를 패배시켰다면, 그것으로 족한가? 그 앞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꽃길' 뿐일까? 현재 국내에서의 심리학에 대한 인식이나 심리학 시장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자면, 심리학 전문가들 간의 경쟁은 어쩌면 시기상조가 아닐지.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여전히 처참하다. 첫째, 각종 심리학에 대한 오해들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자기소개에 '그럼 지금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맞춰볼래?' 하는 답을 들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부터, 심리학을 독심술 등 사이비 과학들과 혼동하고 오해하는 것, 심리학 하면 단지 인터넷 유머 사이트 등지에 떠도는 '가짜 심리테스트' 말고는 알지 못하는 것, 심리학은 뻔하고 당연한 것만 연구하는 학문이라 사회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 등등 심리학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은 여전히 파다하다. 


  둘째, 상담심리학과 임상심리학 외 다른 심리학 분야들에 대해서는 아직 대중에 잘 알려진 것이 없다. 심리학, 하면 흔히 떠오르는 단어가 '상담', '힐링', '치유', '행복', '나는 누구인가?' 등의 내용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심리학은 철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그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한 학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에 충실하게도, 오늘날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무척 방대한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사회심리, 성격심리, 이상심리, 발달심리, 산업심리, 조직심리, 광고심리, 소비자심리, 문화심리, 유학심리, 학교심리, 중독심리, 코칭심리, 측정심리, 생물심리, 인지심리, 신경심리, 범죄심리, 법정심리, 종교심리, 통일심리, 군사심리 등 인문/사회계열부터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심리학 하위 분야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심리학이 가진 대단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심리학의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중은 심리학에 대해 잘 모른다. 단지 모르는 것 정도로 끝났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대중을 기만하려는 온갖 사이비 과학들이 온 세상에 가득하니, 본래 심리학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은 상대적으로 거짓 술수, 사탕발림에 넘어가기 쉽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심리학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대중의 탓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심리학 전문가들처럼 심리학으로 밥을 먹고살아야만 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리고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줄 대체제가 한가득인데, 꼭 심리학을 알아봐 주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면 심리학 전문가들이 심리학을 널리 알려야 하는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인가? 나는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심리학의 놀라운 인기와는 달리, 국내에 마련된 심리학 교육 인프라는 아직까지 한참 모자라다. '심리학과'가 정식으로 개설되어 있는 국내 대학의 수가 아직 20곳도 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원의 경우 그나마 상담심리학 전공이나 임상심리학 전공 분야의 수요와 공급이 제법 있을 뿐, 그 외의 심리학 전공을 다루는 대학원의 수는 극소수다. 결과적으로 대중을 향해 심리학 전문가로 나설 수 있는 이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아무리 몇몇 사람들이 사회 속에 심리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파시키겠노라 힘껏 목소리를 외쳐봐도 돌아오는 성과는 미미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결국 심리학을 통해 먹고살고자 하는 이들은 국내 심리학 시장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직 국내에서 심리학이 나름의 규모를 갖추고 뿌리를 내리기에는 갈 길이 멀다. 심리학에 대한 대중들의 오해는 여전하며, 심리학 관련 인프라 역시 한참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리학 전문가들끼리 서로 치고박으며 얼마 안 되는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바쁘다면, 그 끝에 남은 길은 공멸(共滅) 뿐일 것이다. 물론 얼마 간의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라는 명목, 상호 자극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러나 과잉 경쟁은 곤란하다. 승자독식은 커녕, 결국 파이의 축소와 함께 모두가 망하는 길이 되지는 않을까? 



  나는 심리학 강연을 한다. 그리고 심리학에 대한 글을 쓴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심리학의 가치를 알리려는 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과 경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들을 동지로 여긴다. 왜냐하면 나는 결국 모두가 잘 되는 것이 곧, 다 같이 살아남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나와 교류해 온 많은 심리학 전문가분들께 감사하다. 또, 앞으로도 다양한 이들과 함께 협력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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