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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심리학에서의 측정(measurement)

  적어도 '과학(science)'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분야가 다루고 있는 연구 대상은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해야 하며, 반복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리학은 현재 과학의 한 분야로서 인간의 마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입니다. 방금 말씀드렸던 부분들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않으셨습니까? 과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즉 관찰 가능한 것이 맞습니까?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또 측정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은 어떻게 과학이 되었을까요?



  분명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관찰할 수 없습니다. 들을 수도, 만질 수도, 향기를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볼 줄도 알고, 때론 곱씹어보며 마음을 바꿀 줄도 압니다. 세상 일이란 무릇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일이라 느낄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이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다가가야만 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음을 연구 대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심리학에서는 '마음이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확고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심리학은 다만 '마음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대전제 아래 세워져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라고 해서 마음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신 심리학에서는 마음 그 실체에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마음의 흔적'들을 어떻게 포착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 마음의 흔적들을 열심히 수집해서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그로부터 진짜 '마음'을 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가령 '이타적 성향'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이타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믿어지는 행동 증거들은 관찰하고, 측정하고 반복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는 '이타적 성향'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즉, 평소에 얼마나 많은 기부 활동을 하는가? 봉사 활동은 얼마나 자주 하는가? 길을 가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을 부축하는가? 평소 타인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자원 분배 상황에서 자기 자신만 많이 가지려고 행동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혹은 스스로 얼마나 자신이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이타적이라고 하는 평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동의하는가? 등등 '이타적 성향'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간접 증거들을 우리는 확보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관찰 가능한 간접적 증거가 이타적 성향 그 자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봉사 활동을 자주 한다는 것이 정말 '이타적 성향'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일 수도 있고 타인에 의한 강요(enforcement)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단지 봉사 활동을 자주 한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마음 속에 '이타적 성향'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봉사 활동 뿐 아니라 앞서 언급드린 그 외 다양한 '간접 증거'들 역시 이타적 성향을 완전히 대변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타심이 아닌 다른 동기에 의해서 그러한 행동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많이' 물어봅니다. 단 한 두 개의 물음만으로는 이타적 성향을 포착해낼 수 없을 위험이 높습니다. 그래서 봉사 활동을 하는지도 물어보고 평소에 남을 잘 돕는지도 물어봅니다. 스스로 얼마나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물어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이타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물어봅니다. 혹은 과거에 그 사람이 얼마나 이타적인 행동을 많이 했는지도 찾아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물음들로부터 수집된 응답들을 통합(composite)해서 '이타적 성향'이라는 하나의 값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연구 도구를 우리는 '척도(scale)' 라고 부릅니다. 자존감 척도, 자기 효능감 척도, 자기애 성향 척도, 사랑 유형 척도 등등 아마 여러분들께도 익숙하실 겁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자연히 엄격하고 신중한 태도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A라는 학자가 '봉사 활동 횟수, 기부 활동, 타인들의 평가' 이 세 가지를 물어보고 그 결과를 통합, '이타적 성향'이라는 값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 봅시다. 반면 B라는 학자는 '봉사 활동 횟수, 이타심에 대한 자가 평가와 타인 평가'를 가지고 '이타적 성향' 값을 만들어 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낸 값이 곧 '이타적 성향'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하지만 이타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해 두 사람이 물어본 것들은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A학자의 '이타적 성향'과 B학자의 '이타적 성향'은 과연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만약 학자들이 각자의 주관에 따라 이타적 성향을 묻는 문항들을 만들어 버리면 그 실험 결과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습니다. A학자와 B학자의 '이타적 성향'이 같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같다, 다르다라는 객관적인 판단조차도 불가능한 상황이지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격한 연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신뢰도와 타당도가 보장된 척도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만들어진 척도는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 공유될 것이고, 그로서 학자들 간의 연구 결과들을 비로소 우리는 비교해볼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여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이를 향한 심리학의 도전 역시 나날이 발전되어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으로 심리학의 발전에 따라 마음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한 심리학자들의 노력은, 점차 그 정교함을 더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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