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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다 쓰면 없어질까?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 연구 소개

  행복, 자존감, 삶의 의미, 만족감 등 심리 자원에 대하여, 오래도록 내려오는 암묵적 믿음 한 가지가 존재한다. 바로 돈이나 권력, 자원 등은 유한하지만 심리적 자원은 무한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 전자의 경우, 양의 한계가 있어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없다'고 여기지만 행복, 자존감 등은 단지 개개인의 마음 먹기에 달린 문제이므로 노력한다면, 누구나 각자의 행복, 자존감의 수준을 높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행복에도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행복에도 양(量)이 있는가? 그래서 쓰면 고갈되는 종류의 재화인가? 과학적으로는 모른다. 단지,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단지 추측들만이 난무하는 상황이므로 이 질문을 우리는 무시해도 좋은가? 다른 분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리학에서만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객관적 근거를 보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경우 단지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형은 소심하다, O형은 원만하다, B형은 외향적이다, AB형은 엉뚱하다 등의 혈액형 성격설은 사이비과학에 불과하다. 그러나 몇몇 심리학 연구들에서는 혈액형 성격설에서 제시하는 혈액형-성격 간의 관계가 실제 현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믿음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 충족 예언(self-fulfillment prophecy) 현상의 일종이자 내현 이론(lay theory)의 작동으로 설명한다(링크).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행복에도 양이 있다고 '믿는가'? 라고 말이다. 그리고 행복의 양에 관한 이 믿음은 곧 우리의 실제 행복 수준을 바꿔놓을 수 있다. 2007년 발표된, 연세대학교 서은국 교수 연구팀의 놀라운 연구 결과다. 해당 연구에서는 개개인들의 행복 수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중이 가진 행복에 대한 믿음 한 가지를 소개하였다. 바로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Belief of Fixed Amount of Happiness)'이다.



"이 세상에는 마치 자원(예; 석유)과 같이 한정된 양의 행복이 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로 인해 불행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양은 정해져 있다."
"지금 행복을 너무 소비해버리면 미래에 누릴 행복이 줄어든다." (구자영, 서은국, 2007)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이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믿음, 둘째,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행복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믿음.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낮은 행복 수준을 보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을까? 그 이유 역시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제시가 가능하다. 
첫째, 행복의 양이 제한되어 있다면, 이 세상의 행복 분배는 제로섬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즉, 내가 더 행복해질수록 다른 누군가는 덜 행복해질 것이고, 반대로 다른 누군가가 더 행복해진다면 나의 행복이 더 커지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타인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운명론적 체념을 낳는다.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며 어차피 내 행복 수준은 다른 사람들이 보유한 행복의 양에 따라 결정되므로 '행복을 얻고자 내가 해볼 수 있는 노력의 범위가 제한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 평생 내가 누릴 수 있다면 행복의 양이 제한적이라면, 행복했던 그 이후에는 '불행이 찾아와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을테니까.
 어쩌면 차라리 불행이 일찍 찾아오는 것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지 모른다. 그래야 나중에 더 많이 남겨두었던 행복을 듬뿍 누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있다고 강하게 믿는 이들일수록 가까운 미래에 행복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을 낮게 예측하는 패턴이 나타났다.



행복, 불행, 행복, …그 다음은 '불행'일까?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진술을 뒷받침하는 양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남을 것은 당신의 '믿음' 뿐이다. 우리가 진실을 선택할 수는 없다. 진실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단지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니까. 그러나 '믿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롯이 우리들 개개인의 선택의 몫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선택할 시간이다.
당신은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고 믿겠는가?
아니면 행복의 양은 무한하다는 믿음을 갖겠는가?





** 참고
- 구자영, 서은국 (2007). 행복의 양이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과 주관적 안녕감.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1, 1-19.
- Sakamoto, A., & Yamazaki, K. (2004). Blood-typical personality stereotypes and self-fulfilling prophecy: A natural experiment with time-series data of 1978–1988. Progress in Asian Social Psychology, 4, 239-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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