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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용회 Aug 11. 2018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

글에는 어떤 욕구가 반영되어 있나

  '자기 PR의 시대'라는 말은 80-90년대부터 있었다. 갑자기 기억이 나는 것이, 예전에 MBC에서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던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짝을 만나기를 희망하는 남녀가 나와 커플 게임 등으로 친분을 다지고, 마지막에 일명 '사랑의 작대기'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시작과 함께 각 남녀 출연자들의 자기소개가 차례로 이어졌는데,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적극적으로 자신, 혹은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행위. 그걸 '자기 PR'이라고 하는구나.



MBC<사랑의 스튜디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작대기'



  '자기 PR'이라는 말에는 낭만이 있었다. 가끔 공중파 메인 저녁 뉴스를 보노라면 X세대, N세대 등 신세대의 풍속도를 조명하는 꼭지가 간간히 등장하곤 했다. 기자는 번화가에 나가 개성있는 패션으로 중무장한 신세대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러면 인터뷰에 응하는 신세대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은 자기 PR 시대잖아요.', '튀는 것이 유행이에요.'


  그러나 그 말대로, 얼마나 '자기 PR'이 만연한 시대가 될 수 있었느냐 하면 글쎄요다. '자기 PR' 이 열풍이 되고, 사회 흐름을 주도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었다. 사실 '자기 PR'이라는 말은 당시에는 당당하고 거칠 것이 없는, 기성 세대의 권위와 질서의 저항하는 듯한 '신세대'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자주 쓰였던 것 같다. 젊은 세대만의 독특성을 가리키는 한정적인 표현. 세대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어딘가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던 때였다.



Social Network Service



  진정한 의미의 '자기 PR 시대' 개막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각종 SNS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본격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자기 PR'에 대한 열망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사회 트렌드가 됐음을 내가 실감할 수 있었던 계기는 다름 아닌 싸이월드와 미니홈피의 엄청난 인기몰이였다. 그 때는 그게 뭐라고, 말 그대로 미니홈피에 매달려 살았다. 지금 보면 차마 감당할 수 없을만큼 부끄러운 자기고백들을 잘도 다이어리에 적어놨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적어놓으면 친구들이 내 다이어리에 와서 이제 포도 스티커, 하트 스티커 등을 붙이고 간다. 


  그 뿐인가, 관리해야 할 것은 많았다. 방명록이 몇 개인가, 일촌평이 얼마나 주루룩 길게 달려 있는가, 또 그 위에 아바타는 얼마나 또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는가, 미니홈피 좌측 인사말은 또 얼마나 '간지나는가', 미니홈피 배경음악은 과연 얼마나 세련됐나 등등. 나는 비록 대학생이 되어서야 미니홈피의 맛을 알게 되었지만 정말 그 짧은 경력에도 미니홈피는 순식간의 나의 '자기 PR' 욕구를 자극하고 있었다.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누군가 봐준다는 것이 이리도 중독적일 줄이야. 


  이후 이어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은 자기 표현과 인정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근원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단순히 한 순간에 스치고 말 욕구가 아니다. 과거에는 충분히 그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지만 PC,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SNS 플랫폼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자 SNS와 그로 인해 분출되는 욕구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삶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왜 지금 글쓰기인가?



  이미지와 영상이 범람하면서 글쓰기라는 수단은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드는 듯이 보였다. 간결함과 직관성, 그리고 그 찰나에 담기는 이토록 강렬한 메시지. 이미지와 영상은 이 시대 최고의 광고수단이자, 엔터테인먼트이자, 자기 표현 욕구의 충족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글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대한 한탄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둥, 학생들의 작문 능력이 형편없다는 둥, 트윗 같은 짧은 글만 넘쳐나는 통에 도무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각이라는 것이 맺질 못한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성장세는 그칠 줄을 모르고 있으니.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완전히 대권을 내어줬다고 생각했다. 이제 글의 시대는 저물어 가는구나 했다. 그런데 지금의 판도 변화는 다소 심상치 않다. 어느새인가 글,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 '1인 1책 쓰기' 등의 슬로건을 내건, 주로 퇴근 후 시간이 비거나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직장인들을 타겟으로 한 글쓰기 강좌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시민, 강원국 등 글을 잘 쓰기로 정평이 난 유명 전문가들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도 매우 뜨겁다.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인터넷에서는 웹소설 시장의 약진이 무척 고무적이다.



모임 플랫폼 <온오프믹스>에서 검색된 글쓰기 관련 강좌들



  사람들이 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해보자면 '잃어버린 진득함'이 새삼 그리워진 것은 아닐까.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미지와 영상에 대한 반작용은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글이라는 매체는 본질적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에 기대어 메시지와 서사를 전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독자들에게 직접 체험시켜줄 수 없으니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라는 의미로, 한 줄 한 줄에 사유와 성찰을 꾹꾹 눌러 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지와 영상은 나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 실시간으로 내 생각이 배어들 틈이 없으며, 나는 그저 이미지와 영상이 시키는 대로 수분 간 휘둘려야 한다. 천천히 반추하며 받아들이지를 않았으니 이미지와 영상이 흘러가고 나면, 새삼 남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허탈하고 공허하다. 반면 글은 나를 능동적인 사람으로 만든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자유롭게 뒤로 돌아갈 수도 있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하루 종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가끔은 자판 대신 펜도 들어봐야 할 텐데...



  글을 쓴다는 것 또한 이와 비슷하다. 심리학자들은 글쓰기 활동을 권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데 좋다는 이유에서다. 일기를 쓰든, 편지를 쓰든, 에세이를 쓰든 무엇이든 쓴다면 좋다. 잘 쓰든 못 쓰든 어찌되었든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한 번이라도 더 돌이켜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므로 이롭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단지 머리 속에서 떠올리고 정돈할 수 있는 생각의 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생각은 잘 정리되지 않는다. 더 먼 시간을 담을수도 없으니 사는 것이 점점 단순해지고 얄팍해진다.

  이미지와 영상에 빼앗기는 무수한 시간들이 아까웠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들이 너무 빨리 휙휙 지나가니 어지럽고 도통 정신이 없어 잠시 멈출 기회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사이클이 다시 돌아 사람들은 '글'에 주목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돌고 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한창 글 찾다가 지겨워져서, 다시 그림 보고 사진 보고 영상을 보고. 그러다가 생각 없이 사는 것, 정신 없이 사는 것이 또 퍽이나 유치해져서 다시 글을 찾게 되고, 하는 식의 반복이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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