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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아웃사이더, 꼭 잘못인가?

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위한 헌사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는 직장인들의 '아웃사이더'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모아 보도자료 형식으로 발표하였다. 직장인 1,402명에게 질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7.4%, 즉 10명중 3.7명 꼴로 자신을 직장 내 아웃사이더로 여기고 있음이 나타났다. 특히 이 중에서도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은 33.0%에 해당하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57.1%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현재 자신이 아웃사이더라고 응답한 사람 중, 내심 아웃사이더가 되길 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의 비율은 무려 90.1%에 달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9.9%에 불과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803003606



  직장 내 개인주의, 혹은 '다양성'의 발로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집단주의 문화의 향기가 짙었던, 불과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개인 > 조직은 성립할 수 없는 구도였다. 개인은 집단의 일부가 되어야 했고, 집단의 번영과 존속을 위해 스스로를 감추거나,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주의 바람이 분지 꽤 오래 되었고,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보니 직장 내 풍속도 역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쇠퇴하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 혹은 여타의 개인적/환경적 변수에 따라, 경제활동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은 사회적 은퇴시기에 다다를 때까지 최소 몇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일들을 경험해보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처음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여기던 시절에는 '이직', '퇴사'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상당했지만, 이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는 분위기다. 심지어 자신의 가치관 따라, 흥미 따라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사회적으로 줄을 잇다 보니 '이직', '퇴사'라는 단어에 '쿨함', '당당함', '행복', '소확행', '욜로' 등의 세련된 이미지들까지 붙었다.




부모님 세대 때 '퇴사한다' 하면, 주위에서 연민어린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꽤 됐지만 이제는 박수받을 가능성이 부쩍 높아졌다.



  수직적 위계질서나 보다 밀도 있는 규모에서의 단합, 협동심 등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료제 직장이라면 지금의 이 아웃사이더 현상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자기 할 일만 다 하고 쏙 퇴근하는 풍토가 고착화되면, 조직으로서 존재하기에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장점인 협력적 효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을 우려할 것이다. 그런 직장에서라면 아웃사이더 현상을 일종의 '문제'로 여기려 할 것이다. 다음 스텝은 안 봐도 비디오다. 직원들이 왜 직장(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지 걱정할 것이고, 어떻게하면 협동심과 애사심을 길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할 것이다.



http://www.asiat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288



  가령 위 기사에서는 직장내 아웃사이더 증가 현상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왜 아웃사이더가 안 좋은지 설명하는 데 적지 않은 지문을 할애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논한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증가 현상이 마냥 부정적인 결과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사실 전제부터 위태롭다. 직장내 아웃사이더 증가가 어째서 반드시 직장 내 협업의 감소 및 효율성 저하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가? 다르게 생각하자면, 이는 협업의 소멸이 아니다. 단지 협업이 이뤄지는 방식과 목적이 기존과 달라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수직적이고, 몰개성적이며 질보다는 양으로 밀어붙이던 기존의 방식 대신, 수평적이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한편, 양보다는 팀원 개개인의 고유 역량에 따른 업무 분배 및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는 형태의 협업. 적당히 책임감과 의무를 나눠가지기에 그것에 개인이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부담이 덜 하기에 역설적으로 더 자유분방하고 홀가분한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형태의 협업. 그러한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가능해지기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것이 기존의 방법보다 효율 면에서 더 낫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사장님에게나 직원들에게나 좋은 일이다.

  한편, 사장님의 행복 공식과 직원들의 행복 공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 또한 직장 내 아웃사이더 증가 현상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직원들의 개성을 자르고 하나의 목표로 일치단결할 것을 강요하다보면, 어쩌면 사장님이 행복하고 직장이 배를 불리는 결과를 누릴 수는 있어도, 직원의 입장에서는 성취감도 잠시, 피폐함과 공허함, 그리고 막대한 피로와 스트레스성 질환들을 고된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면에서 '회사가 잘 되는 길'과 '내가 잘 되는 길'을 어느정도 구분하고,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며, 알아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려는 신(新) 직장인들의 모습은 어리석고 철없다기보다는, 야무지고 현명한 처사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직장인들이 행복의 참 의미를 깨우치고 있다!



  행복은 유보될 수 없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우거나 희생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공통적으로 들려주는 교훈이다. 먼저, 나중에 행복하려면 지금 고생하고 벌어둬야 한다며 잦은 야근, 회식, 경직된 조직문화, 날 괴롭히는 직장 내 인간관계 등 다 참으려 하면 나중에는 행복 찾아 나설 체력이 남아날 수 없다. 상처뿐인 영광이다. 행복은 지금 내게 주어진 조건 하에서, 최선을 다해 즐길 때 찾아오는 것이다. 나중에, 나중에 하다가 인생 즐기는 법을 까먹기라도 하면 어찌할 텐가. 노후가 되어 즐겁게 웃으며 떠올릴 추억 하나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면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또한, 행복과 가까운 심리학적 개념들로는 '자기(self-)' 시리즈가 주로 거론된다. 자존감, 자기효능감, 자기가치감, 진정한자기 등등. 그런데 '아웃사이더'가 되지 못하고 직장에만 끌려다니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자아가 실종된 상태에서는 행복을 찾아나설 수 없다.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복이겠는가.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직장 내 아웃사이더들, 즉 자기 행복 공식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존재와 그 태도는 소중하다. 어떤 일에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부디 '아웃사이더'들과 '사장님'들이 훌륭한 타협점을 찾아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로 또 같이' 잘 지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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