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과 통제의 경계를 보다
무감독 시험, 즉 시험감독관 없이 중간/기말고사를 치르는 일선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방면에서 가장 전통이 유구한 곳은 바로 제물포고등학교다. 1956년 최초 시행이래 지금까지 무려 60년 이상 무감독 시험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니 실로 대단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운암고등학교,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인천금융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도 자율성, 양심에 따른 무감독 시험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3/09/0200000000AKR20160309041400065.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1600
그러나 무감독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묻지 않을 수 없는 우려가 함께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바로 통제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스스로의 양심을 믿도록 직접적인 교육을 행한다는 측면에서는 무감독 시험의 그 취지는 존중받을만 하다. 그러나 현실이 언제나 이상같을 수만은 없는 법. 시험을 감독하는 선생님이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더 부정행위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무감독 시험에 대해 '놀라는' 이유일 것이다. 또한 무감독 시험이 훌륭한 시도라 말하면서도 막상 시도하길 꺼려하는 이유일 것이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에서는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무감독 시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약 5일 간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약 391명의 취업준비생들이 설문에 참여하였으며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가 '무감독 시험을 찬성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감독 시험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학생 과 교사 간 신뢰를 쌓을 수 있어서(45.3%)', '학생(수험생)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을 줄일 수 있어서(29.2%)', '학생의 양심을 키울 수 있어서(23.8%)' 등이 있었으며, 반대 측(43%)의 의견으로는 '부정행위가 만연할 것 같아서(40.5%)', '부정행위가 있어도 이를 제대로 파악/처벌하기 어려워서(29.8%)', '소란스럽거나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해줄 사람이 없어서(18.5%)' 등이 있었다.
http://www.career.co.kr/help/media_data_view.asp?rid=2747
역시 무감독 시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통제 불능, 부정행위 발생 등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듯 싶다. 그러나 막연한 우려와 예측만으로 무감독 시험 제도를 반대하기에는, 실제로 무감독 시험을 실시하고 있는 학교들에서 이 무감독 시험을 현실적인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해 어떤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무감독 시험 제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제물포고등학교에서는 무감독 시험의 전통을 지키고자 다음의 철저한 규정 및 상세 프로세스를 마련해 놓았다.
핵심은 무감독 시험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엄격한 의식(ritual)을 학부모/학생/교사 등 모든 교육 현장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60년 이상의 기나긴 전통이 무감독 시험 제도에 권위와 엄숙함을 더한다.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집단적인 의식 공유 상황에서 스스로 일탈자가 되겠노라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한 사람이 저지르는 부정행위가 더 이상 그 사람만의 잘못과 책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의 명예가 달린 일이며, 비전을 공유하고 있던 전체 모든 학부모/학생/교사들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 아니겠나. 무감독 시험의 역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역사와 권위에 저항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무감독 시험의 존속이 단지 전통의 무게와 엄격한 의식 등으로 인해 유지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무감독 시험의 최대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학생 자율성의 존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율성의 예후를 잘 믿지 않는다. 누군가를 알아서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분명 어딘가에서 부작용이 있으리라 우려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을 때 일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왜인가? '청개구리 심리'를 생각해보자. 우화 속 청개구리 같이, 타인의 지시와 반대로 행동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내 자율성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래서 저항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것만 족족 하면서 지시자의 권위에 항거하는 투쟁이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자율성이 보장될 때 일탈이 방지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억압, 구속을 싫어한다. 그래서 한 번 쟁취해 낸 자율성은 어떻게든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율성을 지닌 개인은 양심적일 수 있다. 보다 영속적인 형태의 자율성을 위해 순간의 일탈을 유보하려 들기 때문이다.
무감독 시험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속성을 가늠하는 중요 시험대이기도 하다. 무감독 시험은 신뢰와 불신, 자율성과 통제 사이의 경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지나친 신뢰와 자율성 보장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나친 불신과 통제 역시 바람직하지 않음을 몸소 보여준다. 과연 최적점(optimal margin)은 어디인가? 무감독 시험 제도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