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왜 고민하다 결국 처음에 고른 물건으로 돌아오게 될까?

분석 마비와 의사결정의 문제에 관해

후... 그냥 처음에 고른 걸로 하자.



    여러분은 쇼핑을 하다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여러 개의 후보들이 있어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질 때, 우선 내키는 대로 하나 점찍는다. 하지만 더 알아보고 구매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구입을 보류한 채 각 후보 제품별로 장단점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평점이나 리뷰들도 꼼꼼히 둘러보고, 스펙도 비교해 본다. 값이 좀 나가는 물건이라면 알아보고 고민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철저한 분석을 마치고, 이제 최종적인 구매 결정을 내릴 순간이 찾아온다. 당시 여러분의 경험은 어땠는가? 만족스러운, 최선의 합리적인 구매를 했는가? 혹시 지금까지 분석 결과를 다 무시하고 그냥 처음에 고른 걸로 결정한 적은 없는가?



물론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세상엔 대체재가 너무 많으니까.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자 우리는 평점과 리뷰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자료 조사를 하면서 제품들과 관련된 정보가 쌓일수록,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셈법이 더 복잡해질 때가 많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반대로 의외의 장점이 발견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의사결정하기 쉬웠을 텐데, 의식하게 된 이상 무작정 지나치기에는 찝찝하다. 결국 수많은 정보들에 질려 더 이상 합리적인 구매 의사결정을 내릴 동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그냥 처음에 고른 걸로 하자'와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례는 전형적인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에 해당한다. 분석 마비란 과도한 조사분석으로 인해 의사결정의 부담이 가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왜 알면 알수록 의사결정이 더 어려워질까? 첫째, 당연히 정보의 홍수 때문이다. 고려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고, 정보들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할 수 없다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둘째, 인지적 부담의 문제이다. 자료조사에는 알게 모르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한창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피곤해져서, 그냥 아무거나 빨리 고르고 이 고민을 끝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온다.


    하지만 분석 마비에 이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왜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강력한 동기가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무엇이든 통제하고, 알고 싶어 한다. 오랜 진화의 시간 동안 과감하게 나서서 이득을 추구하기보다는 안전하게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유전자 단위에서 인식해 왔다. 그까짓 이득이야 못 얻어도 다음 기회가 있지만, 리스크를 피하지 못하면?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해, 혹은 심각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몸을 사리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명명백백한 답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분석 활동에 나선다. 부지런히 관련 사례를 수집하는 한편, 각 행위가 가져다줄 결과들을 합리적으로 예상해 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사람들 중에서는 유독 낙관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더 섬세하고 예민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더 분석 마비에 더 취약할까? 물론 후자의 사람들이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 - 분석 마비에 빠진 A씨 -



    분석 마비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물건을 구매하는 문제부터, 심지어 진학, 진로, 취업, 이직, 사업, 연애, 결혼, 이혼 등 인생의 중요한 사건에서도 더 나은, 안전한 선택을 하고픈 욕망 때문에 분석 마비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히 인생의 중요 분기를 앞두고 분석 마비에 빠진 사람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주인공 병(?)'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필자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때는 2000년대 후반, 필자는 대학원을 갈까, 취업을 할까를 두고 무려 6개월 가까이 고민한 적이 있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느라 어느 쪽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취업준비도, 대학원준비도 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것 했다, 저것 했다, 하면서 허송세월만 보냈던 것 같다. 취업을 했을 때, 대학원을 갔을 때, 각 경우의 수에 따라 어떤 장점/단점이 있을지 따져보는 짓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의사결정에 무척 큰 도움을 줬다.



갔다가 아니면 그냥 돌아와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말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어느새 주인공 병에 빠져 버린 나는 은연중에 쓸데없이 비장해지고, 내 결정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마치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어느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 선택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어',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르지', '절대 실패해서는 안돼'와 같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강하게 압박하고 구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냥 돌아와도 된다는 거다. 취업을 했다가 안 맞으면 대학원 가면 된다. 대학원 생활이 안 맞으면? 마찬가지로 그냥 때려치우고 취업 준비하면 된다. 그 당시 내 나이 20대 중반. 갔다가 돌아 올 여유는 차고 넘쳤던 것이다. 새삼 이 점을 깨닫게 해 줬던 친구에게는 지금도 무척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취업 대신 대학원을 택했다. 그리고 대학원을 무사히 마치고 취업 길에도 올랐다.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허용회 작가의 사이콜로피아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 심리학 강의/교육 신청, 직접 개발한 심리검사 참여 가능하며 

기타 심리학에 관한 유용하고 재미있는 정보들을 담을 예정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궁금하시다면 홈페이지 방문 부탁드립니다!!


허작가의 사이콜로피아(바로가기)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