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써보니까 느껴지는 것들
이번에는 뭘 써야 할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소재 고민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특히 어떤 종류의 책을 쓰느냐에 따라 집필에 대한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먼저 필자가 초창기에 썼던 <게으른 사람들의 심리학>은 상대적으로 집필이 쉬웠다. 첫째, '게으름'이라고 하는 한 가지 주제만 진득하게 파고들면 됐기 때문에, 그 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제목을 보는 순간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구나, 알 수 있고 목차를 보는 순간 게으름 이야기만 계속하겠구나, 알 수 있으니 독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주제를 기대하지 않게 된다.
필자의 자존감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존감 높이려다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는 자존감 안정성Stability of Self-esteem이나 학계에 보고된, 자존감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부작용'들에 대해 다룬다는, 일관된 주제의식이 있었다. 더군다나 책이 출간되기 오래전부터 전국에 자존감 특강을 다니며 완성해 둔 강연 PPT, 교재, 그리고 수강생 분들의 소중한 후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간의 노하우와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책 속에 옮긴다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다음으로 출간한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심리공부>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심리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학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과정이었다. 심리학의 정의는 물론, 심리학의 역사를 다뤘다. 그리고 각 심리학의 하위 분과(발달, 이상, 사회, 인지 등)의 흥미로운 연구들을 망라하여 오롯이 나 자신만의 언어로 써내기 위해 주력했다. 게으름, 자존감 책을 쓸 때는 핵심 주제가 단 한 가지였는데, 111 심리공부를 쓰자니 많은 핵심 주제들이 필요했다. 초심자용이기에 일일이 깊게 파고들 수는 없었지만, 무려 100개의 주제를 다뤄 책에 싣게 되었다.
첫째, 도대체 뭘로 채우지?
왜 111심리공부 집필이 어려웠을까? 말해 무엇하랴. 무려 100개 핵심 주제에, 14개 추가 에피소드를 생각하자니 소재 고갈 문제가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각 주제별로 A4 내외의 짧은 분량이었고 여느 심리학 교과서마다 다룰 법한 기본적인 주제를 채택해도 되었기에 부담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 들어가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흥미를 유발하는 데 굳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쳐내는 작업이 반복되었고, 그 빈자리는 응당 새로운 주제를 찾아 채워 넣어야만 했다.
둘째, 완벽주의의 압박
필자는 완벽주의자다. 결과물이 완벽해서 완벽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막상 완벽한 결과물을 내지도 못하면서 완벽해야 한다,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받기 때문에 완벽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특히 A4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끊어야 한다는 과제는 내게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바로 분량 조절의 실패였다.
막상 쓰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은 넘쳐나고, '하, 이건 꼭 넣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인데', '심리학을 다루면서 이 내용을 빼먹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하면서 분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책의 콘셉트 상 분량을 늘릴 수 없었고, 그러자니 핵심적인 지식과 정보들을 단편적으로 늘어놓는 식으로 글이 진행되기 일쑤였다. 너무 딱딱하면 안 될 것 같아 제한된 분량 속에서도 적절한 사례와 흥밋거리를 집어넣는 데 주력했으니, 결과적으로 정보 전달과 흥미 간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꽤나 어려웠다.
셋째, 누구나 다 알 것이라는 착각
소재를 고르면서 특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걱정이 있었다. '너무 뻔한 주제는 아닐까?', '이미 다들 아는 내용인데 괜히 다루는 걸까?', '너무 당연한 얘기만 한다고 비판하는 건 아닐까?', '기존 책들과 뭔가 달라야만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지 않을까?'. 내가 아는 건 누구나 다 알 것 같다는 착각 때문에 과감히 소재를 고르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실 필자는 전자책을 즐겨 보는 편이다. 다 읽고 나서 댓글 또한 챙겨 보는데, 보다 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비판 레퍼토리가 한 가지 있다. '책의 내용이 뻔하다', '검색만 해도 나오는 내용이다', '블로그에 있는데 굳이 돈 주고 책을 사볼 필요가 없다'와 같은 내용이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책의 저자 분들도 고심해서 자기만의 견해를 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새롭지 않다'는 비판에 꽤나 자주 시달리는 편이다. 사실 독자로서 나 역시 어떤 책을 혹평하며 그런 생각을 했었고, 책을 여러 권 쓴 저자가 되고 나니 더욱 그런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렇게 올해 초, 필자의 네 번째 책인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심리공부>가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출간 당시에는 회사 일로 눈코뜰 새 없이 바빴기에 판매 추이나 반응을 살펴볼 여력이 없었고, 집필 과정에 대한 소감을 되짚어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고, 심리학 전문 작가이자 강연자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 지금에서야 뒤늦게 '신간'에 대한 소회를 밝혀본다. 그 어느 책보다도 험난하고 어려웠던 집필 여정이었다. 아직까지는 다행스럽게도 신간에 대해 많은 분들이 지지와 응원의 말씀을 전달해 주셨고, 판매량 또한 기대 이상으로 좋아 한결 부담을 덜은 듯한 기분이다.
신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 있으면 또 다른 책, <심리학을 만나 똑똑해졌다>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는 과연 어땠을까, 그리고 과연 어떨까. 기회가 된다면 다섯 번째 책에 대한 집필 소감 역시 남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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