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 안에 숨은 욕망을 이해해 보자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손가락으로 코딱지를 파는 습관이 있었다. 유치원 때는 주변 눈치도 잘 안 보고 아무데서나 그냥 팠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됐다. 부모님도 나를 강하게 혼내지 않으셨으며 나 말고도 코딱지를 파는 다른 친구들도 있어서, 유치원 생활(?)에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는 눈치를 보게 됐다. 코딱지를 대놓고 파는 친구들도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습관은 습관인지,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코딱지를 파는 버릇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근데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적으로 코딱지를 파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물론 사회화의 영향인지 가리려 애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습관을 모두 제어하지는 못한다. 코딱지를 파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내 어렸을 적 생각이 나서 아련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놓고 바라보지는 못한다. 애써 못 본 척, 아무것도 나는 모른다는 듯이 대하게 된다. 물론, 코딱지를 판 손으로 악수를 청하거나 뭔가를 건네주려 할 때는 속으로 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왜 코딱지를 파게 될까?
나는 심리학 전공자니까, 심리학적으로 그 이유들을 나름 분석해 봤다. 과학적 근거? 그런 건 없다. 그냥 나름대로 곰곰이 (내 과거까지 떠올려가며) 생각해 본 이유들이다.
1. 유아기 퇴행
나이 먹고도 코딱지를 파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어른이 되고 난 뒤, 갑자기 코딱지를 파게 된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대개는 어렸을 때 코딱지를 파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코딱지 파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딱지를 파는 원인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경험에 있다고 본다.
시작은 우연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코딱지를 파는 행위에 본능적인 이유까지는 없는 것 같다. 이제 막 손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아이는 이제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여기저기 아무데나 손가락을 갖다 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가장 가까운 입이다. 그러다 팔이 더 길어지면 이제 콧구멍에도 한번 손가락을 넣어보기 시작한다.
콧바람이 내 손가락을 부드럽게 간질인다. 송송 돋아있는 코털들도 손가락을 어루만져준다. 뭔가 촉촉함이 손가락에 닿는데, 마치 입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침이 묻은 것 같은 익숙함 같다. 긴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해보니 막혔다, 뚫렸다, 뭔가 그 느낌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새로운 감촉과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손가락과 콧구멍의 만남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강화reinforcement 시킨다.
어떤 아이들은 코를 후비며 더 나은 보상을 얻기도 한다. 마침 심심한데 코를 파니 덜 심심해졌다거나, 낯선 환경이나 새로운 도전 때문에 스트레스/불안에 노출될 때, 코딱지를 파내며 상쾌하게 콧속을 정리했더니 부정적인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던가. 이런 특별한 경험들이 누적되며 코딱지 후비기를 습관으로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C-WhsAUVJQs
2. 폐소공포?
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숨이 답답한 것을 유독 더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 본다. 입으로 숨을 쉬어도 되는데, 조금만 참았다가 휴지를 찾아 풀어도 되는데, 샤워하면서 물로 풀어도 되는데 그걸 못 참고 즉각적으로 코딱지를 제거, 최상의 숨구멍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유독 내가 그런 숨쉬기의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좁고 답답한 공간이 지나치게 무서웠고, 숨을 못 쉴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큰 나머지 물놀이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군대에서도 방독면 쓰는 걸 무서워했다(그래서 남들 방독면 쓰고 화생방 들어갈 때, 나만 방독면도 안 한 채 화생방 훈련에 참여, CS탄의 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쌩으로 견뎌야 했다).
그래서 나는 코딱지가 가득 찬 내 상태도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신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일단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우세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내 콧 속에 손가락부터 후벼 넣었고 신속하게 코딱지를 제거해야만 했다.
그래서, 코딱지 파는 습관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1. 불안/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유년기에 코딱지를 파는 행위는 덜 불안하고, 덜 지루하게 만들어 줬다. 그때 생긴 조건화 학습 패턴이 성인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렇다면 코딱지 파는 행위를 줄이려면 '대안 경로'를 마련하면 된다. 즉, 더 이상 코딱지 파는 행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건강한 방법으로 불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먹힐지 안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당신이 습관적으로 코를 파고 있다면, 코를 파는 그 순간! 에 여러분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1) 지금 나는 불안한가? 초조한가? 지루한가? 2) 만약 그렇다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빠르게 마련해 보자. 다른 재미있는 활동을 찾거나, 지금 하던 지루한 짓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신나게 놀아버려라. 그러면서도 코딱지 파는 행위를 멈출 수 없는지, 저절로 없어지는지 스스로를 잘 관찰해 보자.
2. 강박의 해소
코딱지를 파는 이유는 답답한 콧속을 견디기 어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연습을 통해, '콧속이 조금 답답하더라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
갑자기 콧속이 답답하다! 앗, 코딱지를 파고 싶다!! 당장 해결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조금씩 코딱지를 파기까지의 시간을 늘리는 연습을 해보자. 처음에는 10초만 버텨보고, 그다음엔 15초, 20초... 나중엔 1분, 5분, 10분... 견디면서 화장실을 가거나 휴지를 찾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 보자.
콧속이 답답하다면 입으로 적극적으로 숨을 쉬자. 그리고 덜 쪽팔리도록, 도저히 못 견디겠으면 손으로 코 바깥 위, 아래, 양 옆을 눌러가며 코딱지를 벽면(?)으로 몰아넣자. 그러면 좀 숨 쉬기가 편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