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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르시시스트인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사회심리학적 의미

  자기애(Self-love)라고 하면 흔히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심리학에서의 자기애는 나르시시즘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Campbell과 동료들은 자기애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성향이 결합된 용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자기애란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자존감(Self-esteem)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었죠(Two portraits of self-love). 결국 엄밀히 말한다면 나르시시즘은 자기애라는 상위 개념에 포함되는 하위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얘기해보고 싶은 것은 자기애, 그 가운데에서도 나르시시즘에 대한 것입니다('자기애'와 '나르시시즘'은 구별되어야 하는 만큼, 지금부터 흔히 사용되는 '자기애'라는 용어 대신,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습니다).


  나르시시즘이란 무엇일까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에 따르면 나르시시즘 성향(Narcissistic personality)은 보통 다음의 특징들로 설명됩니다. (1)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정도가 지나침 (2) 성공, 권력, 탁월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 등에 대한 판타지 (3) 나 자신은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사람이기에 오직 소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그러한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는 믿음 (4) 타인의 인정을 지나치게 갈망함 (5) 비합리적이며 과도한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음 (6)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려 함 (7)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함(의도적일 수 있음) (8) 교활하고 거만함. 즉 한 마디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르시시즘적 성향이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과대평가하고 최우선시하려는 일련의 성향을 지칭합니다. 자기애의 또 다른 측면인 자존감(Self-esteem)과 비교해보자면, 자존감이 높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이란 유일무이한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의 성장이나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죠. 반면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 타인의 존재란 그저 '자기 자신'을 빛내는 과정에 필요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을 보는 눈 속에, 당신은 없습니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셨다면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은 기본적으로 성격 장애(Personality disorder)에 해당합니다. 즉 정신 이상의 일종으로, '비정상'으로 '진단'되는 특징들이므로 곧 치료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죠. 이에 따라 기존의 심리학 연구에서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병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즉 나르시시즘의 진단 및 대처는 정신의학 분야의 일이었지 일반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사회 및 성격 심리학의 접근 가능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개인주의 가치관이 사회 곳곳에 녹아들고, 개인들의 이기심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으로 고조되면서 나르시시즘을 단지 병리적 특성이 아닌, 하나의 일반 성격적 특성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즉 나르시시즘 성향이란 비단 특수한 일부 몇몇에게서만 발견되는 이상이 아니며, 생각보다 '보편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었죠.


  심리학자 Twenge는 이러한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보고자 광범위한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수십 년 간 미국 내에서 이뤄져 온, 나르시시즘에 한 방대한 연구 자료들을 수집하고 각 자료들에서 연구 대상들의 나르시시즘 성향 척도(1988년도에 심리학자 Raskin과 Terry에 의해 개발된, 일반인 대상의 나르시시즘 측정 도구; 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 NPI) 점수들을 추출한 뒤 이들을 모아 시교차적 메타분석(Cross-temporal meta analysis)을 시도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979년-2006년도 사이, 약 16,475명에 해당하는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 성향 점수를 토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의 전반적인 나르시시즘 성향은 어떤 추이를 보여 왔는지를 계산해보니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약 20년 간, 미국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 변화 추이



  Twenge는 나르시시즘 증가 현상에 대한 징후가 이미 미국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가령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담긴, 다소 '도발적인' 가사를 가진  대중가요들이 범람하기 시작했고, 지난 수십 년 간 미국 사회에서 발행된 온갖 인쇄 출판물들 속에 주어 'I'의 출현 빈도가 점차적으로 증가해 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에게 흔한 이름보다는 세상에 또 없을, 다소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는 사례 역시 점차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급속도로 사회 전반에 퍼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는 '나' 자신을 한껏 꾸미고 과시하는 데 최적화된 도구로, 나르시시즘적 일면들을 잘 드러내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의 나르시시즘 성향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요? 2014년, 한국에서도 Twenge가 수행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나르시시즘-시교차적 메타 분석이 수행되었습니다. 약 13,450명의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진 나르시시즘 성향의 변화 추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축적된 자료가 부족해서 미국에서의 연구보다는 연도 폭이 좁지만, 모양은 유사합니다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에 따라 각 가정에서 태어나는 자녀들의 수가 몇십 년 전과 비교해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자녀에 대한 과보호' 사례들은 이 거시적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타이르려 하자 '내 아이 기 죽이지 말라'며 오히려 역성을 냈다는 어느 부모의 이야기, 심지어 대학생이 된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보살피려는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 등의 현상은 어느덧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의 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사회가 워낙 각박하고 흉흉해서 함부로 타인을 믿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의 증가, 그리고 경제 침체와 맞물린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과 취업난 등 우리를 둘러싼 암울한 상황들은 타인을 돌보기는커녕 '나' 하나도 제대로 돌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 등 우리 사회에 실존하는 어두운 단면들이 곧 청년들의 나르시시즘 성향을 부추기는 원인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애들은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며 청년들을 타박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아닐까요? 믿을 건 오직 나 하나뿐이라며 '자기 자신'만을 우선시하려는 이기심,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무관심과 공감의 결여 등은 더 이상 '우려', '예방'의 대상이 아닙니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사회 · 성격 심리학은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되어 버렸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 참고 문헌


1. Campbell, W. K., Rudich, E. A., & Sedikides, C. (2002). Narcissism, self-esteem, and the positivity of self-views: Two portraits of self-lov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28(3), 358-368.

2. Twenge, J. M., Konrath, S., Foster, J. D., Keith Campbell, W., & Bushman, B. J. (2008). Egos inflating over time: A cross‐temporal meta‐analysis of the 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 Journal of Personality, 76(4), 875-901.

3. 이선경, 팔로마 베나비데스, 허용회, 박선웅 (2014). 한국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 증가: 시교차적 메타분석(1999-2014). 한국심리학회지: 일반, 33(3), 60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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