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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

이타성(Altruism)의 비밀

  때로 우리는 '사랑'에 대해 폄하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랑 타령'이나 하기에는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결혼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집안 배경이나 재력 등 소위 '조건'이 중요하다며, 사랑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의 수가 한계를 모르고 늘어감에 따라 사랑도, 공감도, 소속감도, 자존감도 모두 돈으로 치환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 '끝이 없는 사랑', '무한한 공감', '인류애' 등 우리는 사랑이란 것이 그 범위가 무궁하고 바닥을 보이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고 경이롭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감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생물로서의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아마 의식주(衣食住)가 가장 대표적이겠죠. 얼어 죽지 않도록 보호해줄 의복,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 필요한 음식, 나 자신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집은 어느 누구에게나, 살아있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중요 자원입니다. 하지만 의식주가 살아감에 필수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더라도 그 누구도 그것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때로 의식주의 충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사랑이나 행복, 자존감, 소속감 등의 '심리적 자원'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심리학자 메슬로우가 그의 유명한 욕구 위계론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죠). 그리고 우리는 그 심리적 자원들을 대개 '인간관계'로부터 얻으며 살아갑니다.



사랑, 행복, 소속감 등 그 어느 것도 충족될 수 없는 상태인 외로움을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고전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 등에 관한 경제학적 모델을 구축할 때,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가정하였다는 것은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후, 인간이 항상 이득과 손해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많은 경우 감정에 기반한 '비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린다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새로운 전제가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전제에 대해 여러분은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 모든 것을 고려하자면, 아마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인간은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 어딘가에 있다'가 될 겁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사실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낯선 개인 대 개인, 회사 대 회사 간의 비즈니스적 관계는 물론이고, 지인과의 관계,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돈이면 안 되는 것이 거의 없을 만큼 사회가 각박해졌어도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마저도 무언가를 주고받아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고는 생각하고 싶진 않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고 받음의 대상'을 무엇이라고 여기느냐에 따라 우리는 '기브 앤 테이크'의 의미를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들 간에 주고받는 것은 물질적 재화나 금전만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만이 기브 앤 테이크의 전부였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 타인에 대한 이타적 행위 등은 '인간관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주장에 대한 분명한 반박 사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시간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심리적 자원'을 주고받고 있으며 인간의 '이타성(Altruism)'이라 불리는 현상들은 상당 부분 이러한 '심리적 자원의 기브 앤 테이크'를 바탕으로 작동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심리적 자원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며, 대개는 그 존재와 흐름이 의식적으로 지각되지 않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순수해 보이는' 이타적 행위 이면에는 노동력과 시간, 정신적 에너지 소모 등을 대가로 자기효능감, 기쁨, 행복, 삶의 의미(Meaning of life) 등을 얻는 '기브 앤 테이크'의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꽤 많은 경우에 사실 우리는 자기효능감, 타인의 인정과 주목, 호혜성에 대한 기대, 기쁨이나 행복, 혹은 삶의 의미 추구를 위한다는 '이기성'을 이타적 행위의 동기(Motivation)로 삼고 있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고 받고' 있는 겁니다.



  물론 기브 앤 테이크 원리 하나만으로 이타적 행위 발생의 모든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이타성이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의 대표적인 논쟁 주제 가운데 하나로, 그 실체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지금 시점에서 '이타성을 기브 앤 테이크 원리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개개인이 신념의 영역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물질 자원의 기브 앤 테이크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 간의 교류 속에는 '심리적 자원의 기브 앤 테이크' 원리가 반드시 숨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유지, 발전을 원한다면 상대방과 나 자신 사이에 어떠한 심리적 자원들이 오고 가는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오고 간 것이 없어 보일 지라도,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받고 있는 '마음'의 무게를 헤아려야 하고 또 그에 상응하는 만큼, 당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 곧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심지어 가족이라도 이러한 기브 앤 테이크가 지켜지지 않으면 서운함을 부르고, 갈등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오랜 익숙함이라는 이유로, 혹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이 '기브 앤 테이크' 원리를 간과하고 가족에게 일방적 사랑을 요구하고, 또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브 앤 테이크'에 보다 충실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소위 '비즈니스적'인 관계에서만 그렇게 강조될 원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을 주고 있다면, 당신은 또한 사랑받아야 합니다.
또한 사랑받고 있다면, 반드시 그만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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