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의미감'은 다릅니다
그 일, 왜 하세요?
여러분이 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알다시피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활동은 잠과 일이다. 잠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리고 일이 의미로 가득 차 있지 않다면, 전반적으로 우리 삶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미에 대해 따지기 전에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일의 '의미meaning'와 '의미감meaningfulness'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겠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두 개념이 엄연히 독립된,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 일의 의미meaning
여러분이 하는 일은 얼마나 의미가 있나요? → 일의 의미감meaningfulness
일의 의미meaning란,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목적과 관련된다. '왜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이 곧 일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계를 위해, 사회 공헌을 위해, 정의와 공정을 위해, 환경을 위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관계 유지를 위해, 혹은 '의미를 찾기 위해' 등등 많은 것들이 곧 일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권장된다. 그 일을 왜 하냐고 누군가 여러분에게 물었을 때, 그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생계 때문이죠, 뭐' 이런 수준의 답밖에 할 수 없다면 그건 무척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생명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기에는 '일'이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갖는 가능성이 아깝다. 더 놀라운 경험, 가치, 행복 등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그저 생명 유지 장치로 남기려 하다니.
의미는 만들어내기 나름이다. 세상 일이 다 그렇다. 아무리 단순한 일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도, 돈 얼마 안 주는 일도, 하루하루 다니기 싫은 회사도 기본적으로는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meaning들을 만들 수 있다. 단지 방해 요소가 있어서 피곤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을 보면 자기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가득하다. 누가 보기에는 돈도 안되고, 힘들기만 한 일 같아도 그들에게는 소중한 천직이다. 생계유지 수단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혹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의미를 찾는 데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일의 의미감meaningfulness'이다. 일의 의미가 '무엇what'과 관련된 개념이었다면, 일의 의미감은 '양amount'과 관련된다. 나는 의미와 의미감의 차이를, 머리와 가슴 사이의 차이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싶다.
일의 의미 → 내가 머리로,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유, 방향성
일의 의미감 → 매일 내가 일하며 가슴으로 느끼는, 성취감이나 보람, 충만한 느낌
일을 하다 보면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다. 이 일이 왜 필요한지, 왜 중요한지, 왜 해야만 하는지는 잘 이해가 간다(일의 의미). 그러나 열심히 해도 내가 기대한 것만큼 성취감이나 보상 등이 따라오지 않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일의 의미감). 내가 가야 할 목표는 아직 멀리 있는데, 왠지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리학자들은 단지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의미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내가 일을 하는 의미는 '사회공헌'인데, 나한테는 그게 중요한데 도통 현실에서는 짜친 것만 한다? 인간은 이 인지부조화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의미감에 맞춰, 일의 의미를 축소하고 일 바깥에서 의미를 찾으려 할 것이다.
직무 교육, 기업 교육에서는 직원들에게 타성적으로 일의 의미를 심어주려 노력한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왜 가치가 있는지, 그래서 여러분들이 왜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직원들은 그 내용을 머리로 이해한다. 하지만 일의 의미감, 즉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그간 여러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 봤다. 너무 연식이 오래됐고, 모든 것이 낡은 시스템에 의해 지지되고, 단 한 사람에게만 결정권이 집중되어 있던 답답한 회사도 다녀봤고 그 반대로 직원의 자율성을 가급적 보장해 주는 회사도 다녀봤다.
후자라면 모를까, 전자의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내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의 의미meaning 자체는 명확했지만, 그 의미를 내 노력을 통해 충실히 달성하고 있다는 느낌meaningfulness은 받질 못했다. 그렇게 입사 후 반년 간은 조용히 시키는 것만 하면서 일의 의미감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이런 시기가 반복되다 보니 나는 기존에 갖고 있던 일의 의미가 사라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에 기여? 공정한 가치? 그런 게 다 뭐람. 그냥 난 먹고살기 위해 여길 다닐 뿐이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회사를 다니는 게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망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연장 근무를 자청하며 열심히 새로운 사업 제안서, 기획안, 연구계획서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효율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 문서도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상사에게 그것들을 다 가져가서 부딪쳐 봤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만 안타깝게도 내 의견은 무시되고 말았다. 상사는 내 의견을 햇병아리의 치기 어린 의견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주 헛 일은 아니었나 보다. 내 가능성을 엿봤는지, 상사가 그때부터 내게 뭔가 이것저것 막 가르쳐주고 새로운 일을 시켜보려 노력하게 된 계기가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다시 봤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스스로 일 속에서 의미를 더 느끼기 위해 몰두하고, 자율적으로 고민하며,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으며 이 일에 대한 애착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새삼 내가 처음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던 계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땐 일에 많은 의미meaning를 담고 있었는데, 의미감이 상실된 나머지 그것들을 다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일의 의미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는 개념에 주목하는 편이다. 잡 크래프팅이란 주어진 역할에 머무는 대신, 능동적으로 일을 벌인다거나 목적을 조정한다거나, 방법을 바꿔본다거나, 새로운 협업을 제안한다거나, 과감히 상사와 담판을 짓는다거나 '평소라면 안 했을 것 같은' 행동을 하면서 일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노력을 말한다.
내가 경험했듯, 아무리 딱딱하고 폐쇄적인 곳에서도 뭔가 하려고 들면 그래도 바뀌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일의 의미감meaningfulness을 만들고, 일의 의미meaning를 지켜준다는 것을, 나는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