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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검사가 가진 딜레마에 대해

애초부터 공정하지가 않다면?

음, 내가 보기에 너는 꽤 신중한 성격인 것 같은데



성격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나와 오래 지내 온 가족이나 친구들은 나 자신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의 성격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변의 이야기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할 및 자아를 갖고 살아간다. 자녀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회사에서의 나, 친구 사이에서의 나, 기타 여러 가지 역할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나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나의 일부분만을 본다. 심지어 가족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심리검사는 성격을 여러 각도에서 측정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나의 성격을 가장 신뢰롭게, 타당성 있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훈련된 심리학자가 개발한 성격검사에 의존하는 일이다. 타당성 관련하여 논란이 끊이지 않는 MBTI 조차도, 주변에 질문하는 것보다는 여러분의 성격에 관한 더 많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다.


심리검사에는 많은 문항들이 들어있고, 각 문항마다 다양한 상황, 가정들을 상정하며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여러분은 심리검사에 임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여러 가지 역할이나 모습을 떠올리며 응답하게 되며, 응답 결과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절차에 따라 채점될 것이다.



근데 심리검사? 자기가 응답하는 대로 나오는 거잖아


맞다. 심리검사조차도 한계는 있다. 바로 자기보고식self-reported 검사라는 점이다. 평소 자기가 생각한 바대로 응답을 하게 되니, 때로는 심리검사 결과에 객관성이 결여되기도 한다. 검사 응시자는 마음먹기에 따라 검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기도 하다. 채용 목적의 인성검사를 앞두고 흔히 들을 수 있는 조언이 있지 않은가.


지원기업의 인재상에 맞춰서 응답해


실제로 자기보고식 성격/태도 검사인 채용 인성검사는 구직자들의 거짓말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예를 들어 A기업에 지원하려 하는데 그 기업의 인재상 중에 '책임감'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지원자들은 자신의 실제 성향과 관계없이, 책임감이 높은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응답할 동기를 갖게 된다. 사실 모든 문항이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문항들은 잘 읽어보면, 뭘 측정하려는 문항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기도 하다.


나는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 → 윤리성 측정하는 문항

나는 주어진 일을 제 시간에 끝마치는 편이다. → 책임감 측정하는 문항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한다.→ 자율성 측정하는 문항


채용 인성검사에서 왜곡이 가장 크게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 자기보고식 검사에는 어쩔 수 없이 왜곡이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재미로 하는 MBTI, 상담센터에 가서 응시하는 MMPI 검사 등 모두 예외는 아니다. 정리하면 성격검사에는 반드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왜곡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요구특성demand characteristics, 사회적 바람직성social desirability 등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본질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구, 즉 인상관리하느라 왜곡이 생긴다.



인간은 누구에게든 '잘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정도가 심하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 '호구' 등으로 불린다.



근데 놀라운 건, 성격검사를 할 때 왜곡을 더 잘하는 성격, 왜곡을 덜 하는 성격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관련 연구를 보자.



Bowling et al., 2016



위의 표를 보면 총 10개의 변인이 있는데,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해 보자면 1, 2, 3, 4, 5번은 Big 5 성격을 말한다. 각각 친화성agreeable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정서안정성emotional stability, 개방성openness, 외향성extraversion 이다. 그리고 6번부터 10번까지는 'IER', 그냥 쉽게 말해 자기보고식 검사에서의 응답 왜곡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위의 표에 빨간색 괄호 친 부분을 보면 된다. 4번(개방성openness)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성격들이 응답 왜곡과 마이너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놨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들이, 연구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더 성실하게 검사에 응했음

성실성이 높은 사람들(특히 신중한 사람들)이 거짓 없이 진중하게 응답하는 경향이 있었음

...





필자는 위의 연구를 통해 아이러니를 느꼈다. 성격을 알기 위해 성격검사를 하는데, 이미 성격에 따라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격검사에 응한 우리는 기본적으로 왜곡된 결과지를 받아들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내 성격이 어땠는가에 따라 더/덜 왜곡된 결과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속을 것이다. 그 왜곡된 점수값이 바로 내 성격 점수라고 말이다.


조금 철학적으로 오바하자면,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정확한 성격'을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성격검사에, 성격 때문에 필연적으로 왜곡이 일어난다면, 그러지 않기 위해 검사 응시 중에 성격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하는데, 이는 모순이다. 성격을 알아내려면, 각 문항에 내 성격을 반영한 응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이게 내 성격이 맞을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응시자 입장에서는 일단 스스로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응답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는 때로 대충 응답하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정확한 결과를 받아보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검사를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보조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긍정왜곡 척도, 상식/통념 척도, 반응일관성 등 여러 가지 검사 결과의 객관성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들을 마련하는 한편, 응시자의 성격이 왜곡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계적으로 제거하거나 보정하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흔한 답변보다는, 필자는 생각의 여지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은 본래 어려운 학문이다. 통계를 배워야 하느니, 영어를 배워야 하느니, 그런 것들 다 떠나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마음'이라는 어려운 연구 주제를 고른 그 시점부터 고생길은 훤히 열린 것이다.


'성격' 연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성격 연구에서는 피험자(실험 참여자)들의 성격을 측정하고, 나머지 변인과의 관련성을 검토한다. 하지만 측정 단계에서 이미 성격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이후의 연구 결과 해석에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참 어렵고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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