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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의 자기효능감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1999-2022년 사이의 추이 분석

심리학에서 다루는 개념 중에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것이 있다. 워낙 유명한 개념이라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기효능감은 전설의 레전드 심리학자인 반두라Bandura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자신이 목표로 한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자기효능감은 주관적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자기효능감은 낮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아쉬운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반대도 성립한다. 아무리 부족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자기효능감은 높을 수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회에서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성과를 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기도 하다.



자기효능감의 효능(?)


자기효능감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하며 또 성취 전반에 있어 매우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처음 개념이 제안된 이래로 지금까지 심리학자들은 자기효능감을 말 그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데 열심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웬만한 개념들을 다 자기효능감과 연관시켜 연구하는 작업들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은 회복탄력성도 높고, 스트레스 대처도 잘 하고, 창의성도 높고, 성취 동기도 높고, 우울하지도 않고, 사회불안도 덜 겪고, 정서도 풍부하고, 발달도 수월하고, 대학생활 적응도 돕고, 정신적인 건강에도 도움을 주고, 문제해결 능력도 높여주고, 진로의사결정도 도와주고, 경제적 독립이나 배우자 탐색과 같은 인생 과업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 외에도 자기효능감의 효능이 밝혀진 사례는 매우 많으나 다 적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논문이 아니므로 일일이 관련 레퍼런스를 인용하지는 않겠다.



자기효능감의 추이


때로 심리적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밀접히 맞물리기도 한다. 심리학은 사실 꽤나 미시적인 학문이지만, 사회의 변화가 개인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분명하기에 어떤 심리학자들은 거시적인 관점을 갖고 심리학을 연구하기도 한다.


경제 발전을 통해 생활이 풍족해지고,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도가 높아지면 국민들의 우울, 불안 수준은 평균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펜데믹이 사회를 강타하면 그 영향으로 우울 수준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도 한다. 혹은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자기애적 성향이나, 상호독립적 자기 등의 변화가 집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진행되었던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 연구를 한 편 소개하고 싶다. 한국 대학생들의 자기효능감 추이를 1999년부터 2022년까지, 추적하여 변화 양상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위 논문에서는 시교차적 메타분석cross-temporal meta-analysis이라는 기법이 쓰였다. 학술적인 이야기는 차치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정해진 기간(본 논문에서는 1999-2022) 동안 '자기효능감'이 측정된 논문들을 싸그리 모아서, 자기효능감 점수가 연도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아봤다고 이해하면 된다. 당연하겠지만 똑같은 심리척도를 사용한 논문만 수집되며, 각 논문에서 측정된 사례 수가 커질수록 높은 가중치를 설정하여 분석을 진행하게 된다. 그럼 분석 결과는 어땠을까?



(조수진, 박혜경, 2023)



생각보다 연도에 따른 자기효능감 평균 점수의 기울기가 가파르지 않다. 아주 미세하게 연도에 따라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의 수평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도 저자들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가중회귀분석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적어도 본 연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대학생들의 자기효능감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필자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나라의 GDP도 증가하고 평균 생활 수준 자체는 이전보다 올라갔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사회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됨에 따라(청년 실업, 저출산-고령화, 청년 고독사, 문과 전멸, 전문직 시험 강세, 공무원 직업 인기, 빈부 격차 등등) 대학생들의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인생의 난이도는 결코 이전보다 낮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즉, 이전 세대의 입장에서야 '이전보다 살기 참 좋아졌어~',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지 쯧쯧', '예전엔 더 힘들게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정작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기에 비록 배고파 굶을 일은 없어질 지언정, 제대로 사람구실 하고 살아가기가 여전히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야 자기효능감은 높아질래야 높아질 수 없을 것이다. 취업도 어렵다, 어렵다 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은 꿈도 못꾼다 하고, 내집마련은 로또같다고 하는데, 내가 인생의 퀘스트들을 해낼 있으리라는 '주관적 믿음'이 어디에서 생기냐는 말이다. 오히려 돈을 못 벌겠다, 차라리 그냥 즐기기라도 하자며 YOLO나 부르짖고 있는 현실 아니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자기효능감이 그간 떨어지지 않고 유지라도 되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싶기도 하다.




** 참고

자기효능감이 십수년 간 늘어나지 않았다는 결과는 잠정적인 것일 수 있다. 저자들은 조사 기간이 충분히 길지 않아서, 실제로는 자기효능감이 시간의 변화에 따라 증가해 왔음에도 그것이 포착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일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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